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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음란서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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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과거 성(性)과 관련된 풍자와 해학은 서민을 위한 또 다른 해방구이자 카타르시스였다. 속칭 육담(肉談)으로 불렸으며, 문헌과 구전 등을 통해 이어졌다. 음담패설과 설화를 엮은 강희맹의 '촌담해이'(웃다가 턱이 빠질 정도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 송세림의 '어면순'(졸음을 쫓는 방패와 같은 우스운 이야기),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태평스러운 시대의 한가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들과 '기문''진담록' 등에 실린 웃기는 얘기 789편을 모은 것이 작가 미상의 '고금소총'(예나 지금이나 우스운 얘기를 모은 책)이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도 진한 육담 시조를 지었다.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내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진옥이 답했다(중략)/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송강은 '근화악부(槿花樂府)'에 실린 이 시조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노래했다. 문학계에선 "육담의 묘미와 문학적 카타르시스가 담긴 시조"라고 평가했다. 외설적이라기보다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육담은 구술 방식으로 이뤄질 때 재미를 더한다. 육담의 구연 형태는 해서(楷書).반행(半行).행서(行書).초서(草書) 등으로 나뉜다. 해서는 점잖게 한다는 뜻이고, 반행은 좀 난잡스럽다는 의미다. 행서 또는 초서는 아주 난잡스러우나 포복절도케 한다는 것이다(이원규의 '육담'). 고(故) 이규태씨는 "야밤에 실바람이 실어다 주는 옷 벗기는 소리는 해서에 해당하고, 방앗간도 아닌데 방아 찧는 소리와 샘가가 아닌데 확 돌리는 소리는 반행"이라고 했다. 초서에 대해서는 "소낙비 소리 뚫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창(甘唱.성적 절정에서 나는 소리)"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육담에는 간접적인 은유와 비유를 통해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표현이 많았다. 양반에 대한 평민의 저항의식도 내포됐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어사 박문수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구전 육담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야설(야한 소설)'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이동통신사와 성인물 콘텐트 제공업체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현대판 음란서생인 야설 전문 작가 10여 명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퇴폐적이고 타락을 부추기는 포르노 같은 야설은 불쾌감만 준다.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 간의 은밀한 사랑)은 상징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이뤄질 때 제 맛이 나고, 삶에 활력을 주지 않을까.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