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는 이름 vs 남겨지는 이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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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34면

김하나의 만다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긴다는 말은 사람 입장의 얘기다. 호랑이 가죽을 얻은 사람은 그것으로 용맹함을 증명하기도 하고 장식이나 보온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겠으나, 호랑이 편에서 본다면 가죽을 남기는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더구나 죽은 마당에 말이다.

사실 호랑이는 죽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가죽도 고기도 서서히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존재들처럼.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군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린다면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이 경우 이름은 ‘남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문제는 이름이 남겨질 때가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남기려 애쓸 때 발생한다.

어떤 영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내었으므로 그 사람의 이름이 기억되는 것과,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후자일 경우 때때로 그 노력의 방향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명성을 좇고 어떤 성취든 자신의 이름 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인류의 진보나 성취가 아닌 자신의 명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며, 그조차 여러 곡절과 우연의 산물일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조용히 살다가 사라지며 그 이름은 몇몇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기억되다가 또한 사라진다.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해내며 살아온 한 사람이 몇몇 사람들의 인생에 깊고 따스한 기억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그 인생은 충만하고 단단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또한 위인이 아닐까. 네이버 사전에서 ‘위인’을 검색해보면 국어사전의 뜻은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며 영어로는 ‘great man’이라고 나온다. 이름을 남기지 않는 조용한 위인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이름을 남기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역사에는 알 카포네처럼 온갖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유명해진 이름이나 간신배의 이름도 남는다. ‘오명’은 더러워진 이름이나 명예를 일컫는 말이다. 현 대통령 이전의 여러 전직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 대단한 오명을 남겼다. 최근에는 미투로 인해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난 작자들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린다. 문단ㆍ영화계ㆍ연극계ㆍ법조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명성 높던 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오명으로 변환되고 있다.

그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를 꺼내놓은 수많은 여성들은 이름을 드러내기 전에 수도 없이 망설였을 것이다. 추악한 사건에 자신의 이름이 연루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름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을 저 여성들로 인해 역사는 더디나마 나아가고, 훗날의 사람들은 이 이름들을 기억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름은 남기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것이기에.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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