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되 진실은 밝혀져야〃|노대통령 담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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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요구 충족에 미흡
◇고흥문(전국회부의장)=노태우대통령은 국민이 왜 5공과의 단절을 요구하는지 그 의미를 좀더 깊이 헤아려야 했다.
그것은 과거를 무시하고 덮어두자는 뜻이 아니고 철저히 진상을 파헤쳐 오염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되살려야 한다는 시대적·역사적 요청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5공과의 단절은 뼈를 깎는 고해와 성찰을 전제로 한다.
사안이 무엇이든, 대상이 누구이든 진상이 분명해지지 않고서는 단절도 쉽지 않을 것이고 교훈도 절실하지 못할 것이다.
전두환씨는 비록 전직대통령이지만 사면·용서하는 일은 추후이고 그에 앞서 절대 권력의 남용이 이 나라 역사, 국민에게 끼친 피해를 밝히고 그것을 거울삼아 대통령직 또는 권력의 정도를 밝히는 게 우리의 장래를 위해 더 교훈적일 것이다.
구속자 석방·광주사태 피해보상 및 명예회복 등은 늦은 감이 있으나 잘된 일이다.

<심판 받을 만큼 받았다>
◇박현성스님 (불교조계종서울도선사주지)=국민모두의 지대한 관심 속에 발표된 노대통령의 결단을 일단은 받아들이고 싶다.
5공의 비리는 앞으로 철저히 밝혀질 것으로 본다. 그런 만큼 전전대통령을 구속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한다. 전전대통령은 이미 그 자신 참회중이고 국민의 심판도 받을 만큼 받고있다고 생각한다.
전씨문제는 역사의 심판이 중요한 것이지 한풀이의 육체적 처벌이나 투옥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일 수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심을 국민 모두가 가져야할 때다. 넓은 마음으로 모두를 용서하면서 스스로 밝은 사회를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할 때라고 본다.
국민모두가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나가고 과거의 상처는 스스로가 치유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광명의 시대는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본다.
5<공은 역사적인 실수>
◇이정복씨 (서울대교수·정치학)=바로 사흘전 전직대통령이 정처도 없이 은둔의 길로 떠나는 것을 보았다는 노대통령 담화의 시작부터가 우선 마음에 걸린다.
대통령의 담화문은 아직도 현 정부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갖게 만든다.
전임대통령을 재판정에 세워 감정적 만족을 얻자는 것이 우리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전직대통령과 그를 도와 제5공화국을 세운 사람들이 「5공」 탄생이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 역사적 실수였고 5공시대의 모든 부정과 비리가 바로 이 실수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하기를 바라고 있다.

<칼 안댄 치유방법 환영>
◇이문구씨(소설가)=노대통령의 이번 담화내용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질병에 수술과 투약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면 나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되도록이면 몸에 칼을 대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
전씨부부는 그 동안 감옥생활과 다름없이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들에 대한 응징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의 악몽에 얽매여 국민각자가 갈등만 확대 재생산하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치적·사법적 처리과정 이전에 전씨를 중심으로 한 어두운 기억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해방시켜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국민각자의 건강회복이므로 가급적 금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치자금 문제는 더 이상 폭탄적인 의미를 부여할 가치가 없게 되어있다.
어차피 필요한 것이 정치자금일진대 묵시적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국민이나 여야정치인이나 유신이래 5공에 이르기까지 자의든 타의든 각자가 제몫을 소홀히 했던 점에 대한 책임의식을 새로이 하는 것이 차라리 옳다고 생각한다.

<광주관련자 축출해야>
▲홍남순씨(변호사·전남민주회복국민협의회의장)=『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말라』는 범서의 말처럼 정치적 보복은 반대하지만 공정한 조사와 재판을 거쳐 유·무죄를 가린 후 국민적 동의를 바탕으로 사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씨는 5공의 모든 책임을 지고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서 진실을 밝혀야한다.
광주문제는 명예회복과 보상에 앞서 진상을 철저히 조사, 발포 명령자들을 가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하며 특별법 제정은 그후의 일이다.
특히 광주민주항쟁과 관련, 당시 부당하게 연행, 구금됐거나 조작된 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형을 받은 3천여명이 넘는 민주인사들에 대한 정신적·법적 보상 등의 대책도 강구돼야한다.
소위 「5공 정치범과 시국사범석방·복권 등」은 너무 늦었지만 환영한다. 당정 쇄신은 정파를 초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물들을 고루 등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며 특히 광주학살 관련자들은 당정에서 모두 축출돼야한다.

<기강확립에 나쁜 선례>
▲한승헌씨(변호사)=전씨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않는 것은 절대다수 국민의 요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대통령일지라도 범죄행위가 드러난 특정인에 대해 사법처리를 못하게 할 권한은 없다.
전씨의 문제는 불문에 붙이고 그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사법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가 기강확립을 위해서도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진정 5공 비리를 척결하려면 전씨의 범죄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용서해야할 과오를 밝힌 다음 국민의 뜻을 묻는 방향으로 일이 처리돼야 한다.
시국사범석방조치는 때늦은 감은 있으나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인 조치로 본다.
다만 석방의 기준과 범위는 좀더 지켜봐야 할 일이고 어떤 경우에도 이 조치가 전씨에 대한 사법적 불문처리와 교환조건처럼 비쳐져서는 안 된다.
전씨문제를 마치 인질 석방의 교환조건처럼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광주·삼청교육대·공직자 숙정 등은 명예회복·보상이전에 진상규명이 절대 필요하다.
진상과 책임소재를 덮은 채 보상금으로 가해자의 죄책과 피해자의 아픔을 묻어 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자금 양성화 만족>
◇구자경씨(전경련회장)=노태우대통령의 특별담화 6가지 쇄신 약속은 합리적이고 전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날의 비리를 척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이해와 관용으로 전진하는 일도 값진 일이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경제계로서는 정치자금의 양성화와 함께 과거와 같은 여러가지 비리 요인들을 쇄신해 나가겠다는 의지표명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사회가 혼란하여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경제가 침체하여 민생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제 모든 국민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과거를 묻어버리고 심기일전하여 밝은 내일을 향해 다같이 힘찬 걸음을 옮길 때라고 생각한다.

<국민화합 일환 환영>
◇김적오씨(한양대교수·경제학)=원칙적으로 보면 전직국가원수라도 잘못과 비리가 있으면 마땅히 사법적 처리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5공 비리 척결의 목적이 앞으로의 나라발전과 국민화합을 위하는 것이라고 보면 오늘 노대통령의 특별담화는 받아들일만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두환씨가 최근 5공 시절의 모든 비리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고 이를 전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밝힌바 있으니 개인적인 생각으론 용서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노대통령이 밝힌 6개항 시국 수습조치는 광주 및 삼청교육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얼마나 충분하게 이루어질지 의문이지만 일단 정부가 그 같은 의지를 천명한 것은 환영할만하다.
특히 정치자금 양성화문제는 기업인들로 하여금 엄청난 준조세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경제에 비해 흔히 낙후되어 있다고 지적 받는 한국정치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자금 의혹 씻어야>
◇박금순씨(한국부인회회장)=전두환씨 개인 재산은 그 정도로 더 이상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정치자금 관련부분은 보다 철저히 조사하여 국민들의 의혹을 씻어야 한다.
단죄돼야 할 5공 비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일해재단, 새세대 육영회, 심장재단 등을 앞세운 기금조성과 정치자금 모금과 관련된 부정과 부패일진대, 어찌하여 그 부분을 덮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과연 누구에게 얼마를 받아 누구에게 얼마를 주고 어떻게 썼는지, 속 시원히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과오를 빈다면 전씨의 사법적 단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현 시점에서 5공 비리와 부정 수사를 정부가 맡는다면 과연 국민들이 그 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국회특위도 문제된 비리가 철저히 밝혀질 때까지 존속해야한다.
시국 관련 사범의 석방 및 복권은 전씨문제와는 별도로, 조건 없이 실시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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