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금수품목 반입과 북한 주적 삭제, 정부 신중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북 금수품인 정유제품 등이 북한에 넘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6∼7월 연락사무소 개소를 준비 중인 남측 요원들이 쓸 1억여원어치의 석유·경유 8만여㎏과 여러 대의 발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들 품목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 반입이 금지돼 있다.

당국은 들어간 물품들이 북한 내 남측 요원들이 쓰는 것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엔 제재는 정유제품의 판매·공급 및 이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을 뿐 예외를 두지 않았다. 당연히 당국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누가 쓰는지와 별개로 금수 품목을 버젓이 북한에 들고 간 건 국제적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매사에는 앞뒤가 있는 법이다. 뒤늦게 대북제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유엔 동의를 먼저 얻는 게 옳다. 남북 간 군 통신선 복원과 이산가족 면회소 수리에 필요한 물자를 들여갔을 땐 안보리에 미리 통보해 제재를 면제받지 않았나.

국방백서에 ‘북한 군·당국=적’이란 표현을 삭제키로 한 것도 성급하다. 4·27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키로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약속한 비핵화는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올여름에 우리는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하지 않았지만 북한군은 군사훈련을 했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가 남아 있는데도 우리만 주적 개념을 없애면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당국이 주장하듯 남측 요원이 쓸 기름과 발전기를 가져간들 북한 핵위협이 커지지 않는다. 또 주적 개념을 없앤다고 우리 대비태세가 달라지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없는데 정부가 남북교류에 매달려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과속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