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명단보다 해직 자 대폭 늘어|「언론인 대학살」실마리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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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백 명에 이르는 현역 언론인의 붓을 꺾어버린 「80년 언론인 대학살」은 보안사가 주도했으며 특히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언론사태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21일 국회문공위의 언론인 강제해직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는 당시 이용린 보안사 언론 과장 등 보안사요원, 이상재 언론 검열 단 보좌관· 허문도 중정 비서실장·이광표 문공장관 등 언론인해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 한 것으로 보이는 12명의 증언을 들은 결과 언론인해직에 따른 모든 의혹을 푸는 열쇠는 체미 중인 권정달씨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증인들의 이날 증언내용을 대략 정리해보면 △80년 4월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인 권정달씨가 언론대책 반이란 것을 만들었고 △대책 반 책임자로 당시 대공요원 이상재 준위를 임명, 이씨를 통해 언론인해직과 언론 통폐합의 실행업무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권씨가 「문제기자」명단을 중정 등 유관기관의 협조를 받아 보고하라고 지시해 정보 부 와 치안본부에도 필요한 명단을 제공토록 협조를 요청했고 두 기관의 작성명단을 전달받은 뒤 이를 취합해 90여명의 명단을 7월 하순께 권 처장에게 보고했다.
이씨는 실제 명단작성에 기준이 된 것은 언론관계의 포고령 위반자뿐만 아니라 기타 체제도전이나 부정비리관련자도 끼여있었으며 대상은 재경 중앙지 기자에 국한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역시 7월 권씨는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2백 명 정도로 늘어난 명단을 당시 이광표 문공 장관에게 직접 건네줬다.
이광표씨가 받은 명단에는 서울 주요 일간지의 기자들이 각 사 별로 20명 정도씩 있었고 경제지·특수 지와 지방사의 기자명단은 빠져있었다는 것.
이광표씨는 이미 7월초 보안 사 언론대책 반에 파견 나가 있는 문공부직원 김기철씨로 부터 『공직자숙정과 같은 맥락에서 언론인에 대한 숙정도 있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광표씨는 권씨가 명단을 직접 건네주면서 『극도의 보안사항이므로 직접 가져왔다』며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에 대해 자율정화 결의를 해주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광표씨는 이어 권 처장으로부터 받은 해직 대상자명단을 각 언론사에 전달했다.
이 같은 일이 있고 난 얼마 뒤 기자해직이 있었고 그해 9월 말 권씨의 지시로 이상재씨의 대책 반이 실제 해직상황을 종합정리 보고했을 때는 7백여 명이었다는 것이다.
권씨는 또 80년 8월초 이상재 씨를 불러 거의 완벽하게 작성된 언론 통폐합 안을 건네주며 이를 정리해 9월말까지 보고해 달라고 주문해 이씨는 각 언론사 통폐합에 따른 인원조정·처우·복지개선 등만 보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권씨가 건네준 통폐합 안이 실제 내용과 골격이 거의 비슷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들로 미뤄보면 몇 가지 의혹이 생긴다.
첫째 언론대책 반이 문제기자 90명 명단을 올렸는데 이것이 당시 이광표 문공 장관에게 전달될 때는 2백명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면 2백 명 명단을 작성한 곳은 어디며 언론 대책 반 외에 언론 전담 부서가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 이광표씨가 서울주요일간지를 상대로. 2백명 명단을 통보했는데 실제는 왜 2백65명(경제지 등 특수지와 통신·지방 모두 합치면 7백11명)이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과연 각 언론사가 해직기자를 각 사의 자체판단으로 늘렸느냐는 문제다.
세 째 서울은 보안사·문공부가 했다면 지방은 또 어디서 했느냐는 문제다.
이런 문제에 대해 모두가 미국에 가있는 권씨에게 떠넘겼고 『권씨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뤘다.
언론통폐합·언론해직 모두 권씨가 했다면 당시 권씨 혼자 차 치고 포 치고 한 격인데 그렇다면 과연 권씨가 혼자서 언론문제를 다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증언으로 미뤄보면 별도의 대책반이 있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상재씨와 언론대책반의 증인들은 「권씨의 부재」를 이용해 사전협의 했거나 사태를 은폐했을 수도 있다.
이광표씨는 당시 언론대책 반에 나가있던 문공부직원 김기철씨로부터 『사회정화차원의 언론정화가 있다』고 했으므로 대책 반 책임자인 이상재씨가 이를 몰랐다고 한 점은 명백한 위증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날 이철 의원은·국보위 문공 분과위의 「언론계자체정화계획」이란 3단계 숙정 방법에 관한 대외 비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구체적인 3단계 숙정 방법까지 적시해 △1단계(7월25∼30일)는 문공부주관으로 한국신문·방송협회의 긴급총회를 소집해 자율적인 숙정을 결의하고 △2단계(8월1∼10일)는 각 사 발행인 책임 하에 언론 자체 정화 위를 설치, 자체 숙정 하고 △3단계(8월11∼30일)는 소기의 성과가 없을 때 경영주를 포함해 합수단에서 조사 처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결국 말만 자율정화지 거의 공갈협박에 의한 정화작업임이 확증됐다. 동시에 국보위 문공 분과위의 개입도 명백히 드러났으며 문공 분과위원을 경직하고 있던 허문도 당시 중정 비서실장의 『해직문제는 모른다』는 증언도 명백하게 위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철 의원이 제시한 「언론인정화결과」라는 문공부 문서는 80년 당시 해직대상 언론사종사자는 9백33명이며 이중 명단 수록 자 3백36명 중 38명은 해직이 보류되고 2백98명이 해직됐으며 나머지 6백35명은 자체인사 정화자란 것이다.
이 문서에 대해 이광표씨는 『문공부의 공문서가 아니다』고 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규명을 싸고 앞으로 계속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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