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 고아 수출국 오명 벗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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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가 지연이를 입양했어."

오영순(가명.47.여)씨는 7년 넘게 키워온 입양아 지연이(가명.초등 4년)에게 입양 사실을 최근 털어놨다. 지연이는 입양된 자식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큰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 뒤 지연이는 일기장에 느낌을 적었다. "충격을 받고 조금 실망해 울었지만 지금은 슬픔이 없다. 엄마가 진짜 내 엄마니까"라고 했다. 오씨는 둘째 주연이(가명.초등 1년)도 4~5학년쯤 되면 입양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다. 아이들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오씨는 1999년 1월 당시 세 살인 지연이를, 그해 12월엔 갓 태어난 주연이를 입양했다. 그는 "결혼 전부터 형편이 되면 입양하기로 결심했는데 그동안 아들(25)을 키우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아들이 성년이 되자 딸을 더 두고 싶어 입양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최근 남편의 중고차 매매 사업이 어려워져 조만간 아파트를 팔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핏줄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다. 기른 정(情)이 피보다 진하다"고 말했다.

#2. 표정미(31)씨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미소(5)와 조아(2) 두 딸을 입양했다. 이 중 조아는 '결연 입양'을 한 경우다. 표씨는 조아를 미혼모인 상태에서 낳은 생모(18)와 결연을 맺었다. 당시 생모는 조아를 한 달간 혼자 키우다 벅차 친권을 포기했다. 충남 아산에 사는 표씨는 요즘도 전남 목포에 사는 생모와 한 달에 한 번씩 안부를 주고받는다. 직접 사진을 보내 주기도 한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버려지는 아동의 수는 한 해 9000~1만 명 정도. 그러나 이 중 입양되는 아이들은 3분의 1 남짓이다. 나머지는 가정위탁이나 보육원 등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다. 2005년 한 해 입양 아동 수는 3562명에 그쳤다. 그나마 국내 입양은 절반에 못 미치는 1461명(41%)에 불과했다. 국내 입양 비율은 99년 40%를 넘어선 뒤로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입양에 대한 사회인식에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숭실대 노혜련(사회사업학) 교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결혼연령 상승, 불임부부 증가 등의 영향으로 출산 대신 입양에서 대안을 찾는 부부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2000여 명 이상의 아동을 해외로 내보내는 현실을 개탄하는 여론은 커지고 있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를 걱정하면서 세계 4위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못 씻는 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이철재.한애란.박성우.권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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