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레벌떡, 공연에 늦었는데 … 로비 모니터가 효자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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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예프게니 키신 피아노 독주회 실황을 로비 모니터로 보고 있는 관객들. [예술의전당 제공]

지난달 8일 오후 8시 1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첫 내한 독주회의 막이 오른 지 10분이 지났지만 '로비 모니터' 앞에는 300여명이 서있었다. 첫 곡이 끝난 뒤 지각 관객이 입장한 다음에도 200여명이 남아 끝까지 공연 실황을 지켜봤다.

로비 모니터는 원래 관객의 공연장 출입과 질서 유지를 맡고 있는 하우스매니저 등 스태프들이 공연장 내부 상황을 모니터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공연 진행용 폐쇄회로 화면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요즘엔 공연문화의 틈새를 매우는 디지털 메신저로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로비 모니터의 주 고객은 지각 관객이다. 모니터는 객석 입구에서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지각 관객의 초조함을 달래준다. 지각 관객을 위해 공연장 문은 언제 열릴지 모른다. 이들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대개 지휘자가 결정한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무대감독 이동조씨는 "공연 당일 무대 리허설 때 연주자와 만나 지각 관객을 위한 입장시간을 정한다"며 "슈베르트의 연가곡'겨울 나그네'같은 긴 곡을 전반부에 연주하면 중간 휴식 때나 입장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중간 휴식 때까지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하는 연주자도 있다. 전반부에 연주하는 작품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연주자의 양해를 얻어 아예 5~10분 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전석 매진으로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로비 모니터는 중요하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나 계속 기침이 터져 나와 객석에서 빠져 나온 관객들도 애용한다. 저녁식사 후 산책을 나왔다가 한 두 곡 듣고가는 인근 주민들도 늘고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층 로비에는 60인치 와이드 PDP 모니터가 2대 있다. 1988년 개관 당시 설치된 30인치 TV에 비해 두 배로 화면이 커졌고 화질도 훨씬 좋아졌다. 로비 벤치에 앉아서도 잘 보인다. 음향실에 있는 카메라 두 대로 잡은 클로즈업 화면과 전체 화면을 번갈아 내보낸다. 음향도 공연 실황음반 제작을 위해 무대 위에 매달아 놓은 12개의 녹음용 마이크로 잡아낸 것이어서 객석에서 듣는 것보다 더 명료하고 생생하다. 키신도 자기 연주를 들어 보기 위해 연주가 끝난 뒤 11만원을 내고 CD 2장에 실황을 담아갔다.

예술의전당 음향감독 김효균씨는 "로비 모니터가 원래 공연 진행용으로 만들어져 다양한 연주 장면을 잡지는 못하지만 음향은 나무랄 곳이 없다"며 "TV 녹화중계용 카메라가 동원될 경우엔 방송국의 협조를 얻어 생동감 넘치는 화면과 음악을 로비로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예술의전당 집계에 따르면 지각 관객은 전체 청중의 10% 정도. 예술의전당 하우스매니저 양우제(35)씨는 "뒤에 서서 보시라고 부탁해도 연주 도중 맨 앞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분이 있어 공연 끝나고 다른 관객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음악회는 연주자와 청중, 공연 스태프가 모두 참여하는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처음부터 관객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한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공연에선 첫 곡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무다.

지각 관객의 에티켓

1. 도우미(하우스 어텐던트)에게 문 열어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2. 한 곡이 끝난 뒤나 무대 전환시 입장할 수 있도록 출입문 가까운 곳에서 기다린다.

3. 입장 후에는 도우미 안내를 받아 입구 쪽에 서있거나 뒤쪽 빈 자리에 앉는다.

4. 한 곡이 완전히 끝나고 연주자가 잠시 퇴장했을 때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5. 출입문 옆에 있는 좌석 배치도를 봐두었다가 헤매지 않고 단번에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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