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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씨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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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동통신서비스 업체들은 진작부터 외국에 들어가기 위해 목매달고 있다. 국내 시장은 포화상태지만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SKT와 KT 등이 열심히 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어느 나라건 통신은 국가의 핵심 기간사업이다. 딴 건 모두 개방해도 통신만큼은 외국 기업의 진출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창업자였던 김우중 전 회장은 달리 대접받았다. 국내에서는 못했지만 외국에선 사업권을 받아 통신업을 했다. 국내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중국 내 사업권도 두 개나 받았다. 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나이지리아.파키스탄 등에도 진출했다. 국내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베트남 사업권도 시간 문제였다. 세계경영의 성과였다. 남들은 당장 돈벌이가 되는 나라만 겨냥했지만 그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개발도상국에 눈독을 들였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그런 투자와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부탁도 통했을 게다.

김우중씨가 쓰러진 뒤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개도국이거나 사회주의국가일수록 인맥이 가장 중요하다. 오랫동안 다진 인간 관계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한다. 망한 그에게 뭘 기대할 게 있다고 베트남 정부가 국빈처럼 대접했을까. 그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면 이들 국가에서의 한국 위상은 매우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김우중씨의 공과는 정확히 평가돼야 한다. 역사의 죄인이라거나 외국으로 돈 빼돌린 사기꾼 취급만 받아선 곤란하다. 과오가 없다는 건 아니다. 기업가는 실패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죄다. 대우의 부실을 뒤치다꺼리하느라 공적자금이 무려 30조원이나 들어갔다. 그렇다고 검찰이 징역 15년과 추징금 23조원을 구형하면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 장본인'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너무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에겐 과 못지않은 공이 있다. 막판에 나라경제에 피해를 줬지만, 그 피해 이상으로 엄청난 이득을 준 것도 사실이다. 1967년 불과 500만원으로 세운 회사를 98년 말 재계 서열 2위 그룹으로 키운 공적이 으뜸이다. 샐러리맨들에게는 우상이었고,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대우의 신화를 보고서 무수한 인재들이 '제2의 김우중'이 되겠다며 도전했다. 좌절한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그 좌절과 도전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세계경영도 그의 공적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장보고 이래로 해외 네트워크를 그렇게 잘 만든 사람이 김우중씨 말고 또 누가 있었는가. 그의 선택은 옳았다. 세계화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93년 그는 '세계경영'을 내걸고 외국으로 내달렸다. '하나가 된 세계 시장에서 제조.판매.투자하는 무국적 기업이 대우의 지향'이란 그의 사상을 다른 기업들은 한참 후 실천했다. 그만큼 무한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남들처럼 적당하게 회사를 키워 적당히 만족하며 인생을 즐기려 했다면 70세의 나이에 징역 15년형을 구형받는 '수모'는 받지 않았을 게다. 나이 들고 지위가 높아지면 누구나 치는 골프도 시간이 아깝다며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다. 서류가방 하나 달랑 들고 수행 비서와 함께 공항 식당에서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며 전 세계를 누비던 그였다. 그에겐 회사를 끝없이 키우려 한, 요즘 기업인들에게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업 욕심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 지나쳤던 것이 문제였다. '새 시대'에는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는 '한 시대'를 꽃피운 사람이다. 나라를 키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런 사람의 수많은 공은 젖혀두고 과만 강조돼선 안 된다. 그를 아직도 '비즈니스 영웅'으로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