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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윤병세·차한성과 공관서 징용재판 연기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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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재임 당시 일제 징용 사건 재판과 관련해 현직 대법관을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 사항을 전달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검찰은 외교부 기록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춘·윤병세·차한성 삼청동 공관에 모여 회의

검찰 관계자는 14일 “2013년 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자신의 공관으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대법관을 불러 일제 징용 사건 재판과 관련한 논의를 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알려졌다. 일제 징용 사건은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민사 소송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인 간의 재판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은 행정부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 중대 불법 행위"라고 설명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첫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첫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한·일의 우호적 관계’를 중시하는 청와대의 입장을 전하며 일제 징용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길 것'을 요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이미 일제 징용 생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라면 대법원이 판례에 따라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었음에도 당시 대법원은 '시간 끌기'를 한다는 비판 속에 사건을 전원 합의체로 넘겼다. 이후 5년 동안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지 않았고, 소송을 낸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 9명 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기록 중시하는 외교부, 장관 관련 보고서 드러나

삼청동 공관 출입 내용은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외교부 문서 등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조사했으며 당시 외교부 관계자들도 소환 조사했다"면서 "공관 출입 내역에 대한 기록이 있는 만큼 김기춘 전 실장도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강제노역 사건 재판에 대해 다음 주 중 전원합의체 심리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법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심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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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희 기자 jo.so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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