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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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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미나 참석자들은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무참히 파괴하고 엄청난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긴다』고 전체, 고문피해자의 실상을 파악해 보상하는 한편, 고문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집권층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한양대의대 김이영교수(신경정신과)는 주제발표를 통해 고문은 외상이 치유된 뒤에도 수개월∼10여년에 걸쳐 각종 통증을 유발함은 물론, 자긍심과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심각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의사들이 지난 74년 고문피해자 1백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의 62%가 신체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였다.
신경및 감각증상으로는 두통이 36%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난청(l5%) ▲시각장애(14%) ▲알콜감당능력장애(11%) ▲촉각장애(6%) ▲어지럼증(4%) 순이라는것.
또 신체증상으로는 소화장애(32%), 심폐기능장애(22%), 관절통(19%), 보행장애(l7%)등이 나타났다.
정신증상은 더욱 심해 피해자의 75%가 기억과 정신집중, 그리고 수면·성기능 장애를 보였다.
김교수는 이같은 각종증세에 못지않게 심각한것은 고문피해자들이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고 자긍심과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자신이 매맞은 고통을 잘알면서도 가족을 별다른 이유없이 구타하는등 인격파탄을 일으킬 우려가 높다는 것.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병력의 청취이나 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고문경험을 다시 얘기하도록 하는 자체가 「제2의 고문」일수 있으며 고문 피해자가 타인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감을 없애고 치료자와 「관계형성」을 하기 위해 맛사지를 적용한다.
맛사지는 통증을 없애주면서 피부접촉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켜주는 좋은 치료법의 하나다.
관계형성을 위해서는 또 동료의식을 느끼는 고문 피해자들을 한데 모아 경험을 서로 얘기하도록 유도하고 치료자가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끼어 치료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고문피해자는 후유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데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꾀병을 부리거나 증세를 과장하는 것처럼 느껴질수 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고문피해자의 치료·재활센터는 현재 덴마크·벨기에·영국·프랑스·캐나다·미국등 20여개국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응접실·주방·식당및 작업실등 시설을 마련, 고문피해자의 가족을 치료센터에 불러 하루를 보내게 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또 공작실·음악감상실등을 만들어 놓고 정서를 순화시키고 있다.
벨기에의 치료센터는 1년에 한번씩 가족과 고문피해자를 해변휴양지로 데리고가 각종놀이를 통해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방법도 실시하고 있다.
이와함께 환자를 가능한한 종합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고 있는데 이는 입원자체가 또다른 형태의 감금으로 피해자에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 한완상서울대교수(사회학)는 토론을 통해 『폭력이란 희소한 자원을 부당하게 독점한 어떤 세력집단이 자신들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제도화된 강제력』이라고 규정짓고 고문이 「일상화된 악」으로 통하는 사회관념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양길승사무국장(성수의원장)은 그동안 국내 고문피해자들을 치료해오는 과정에서 고문이 공포를 극대화하고 희망을 없애버리는 비인도적인 행위임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반인들은, 고문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자책감을 갖고 고문추방켐페인에 참여하는 한편, 고문피해의 실태파악·보상에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씨가 치료한 고문 피해자 14명중 가장 많이나타낸 증세는 배변장애로 이들은 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또 고문을 당한 신체부위의 통증은 물론이고 고문을 당하지 않은 곳에까지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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