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한 고뇌 게을리한 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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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9일 김우중(사진)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중형을 구형한 것은 대우사태가 국가경제에 끼친 악영향이 컸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이 40조원 규모의 분식회계 등 대우그룹 경영 비리를 주도했던 만큼 그룹 총수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논고문에서 "대우사태는 김 전 회장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경영이 야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정에는 전 대우그룹 임직원 등 100여 명이 방청했다.

◆ "성공한 기업인 바랐는데…"=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온 김 전 회장은 최후 진술을 하면서 연이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모든 게 저의 부덕과 미욱함에서 비롯됐다"며 "성공한 기업인이 되기를 바랐는데…"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국민경제에 활력과 자신감을 심었다고 자부한다. 기업인으로서 한순간도 국가를 위한 고뇌를 게을리한 적이 없다"며 자신을 옹호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사업차 프랑스 파리를 100번도 넘게 갔지만 너무 바빠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도 가지 못했을 만큼 김 전 회장은 개인 영달보다 국가 발전을 위해 뛰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또 "김 전 회장이 1999년 출국했던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가 해외로 나가도록 압박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대우사태가 터진 99년 10월 출국한 뒤 5년8개월 만에 귀국했다.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된 뒤 심장질환 등이 악화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이에 검찰은 "피고인은 회사 경영상 어쩔 수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 참회를 바라는 국민에게 실망을 준 만큼 건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빼돌린 돈이 해외투자자들이 맡긴 것이라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을 편다"며 "이번 재판은 우리 사회의 위선과 거짓을 없앨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라고 지적했다.

◆ "대우 비리 단죄, 상징적 효과 그칠 듯"=검찰이 김 전 회장의 자금 해외 유출과 불법 외환 거래와 관련해 구형한 추징금 23조여억원이 확정돼도 실제로 추징하는 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이 보유한 재산이 천문학적 추징금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3조여억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돈과 불법 외환 거래 금액 등을 환산한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회장이 88년 29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프랑스 포도밭 59만5922평 등의 재산이 드러났지만 해외재산이어서 추징이 쉽지 않은 상태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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