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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라 밖에서 경보음 울려대는데 “괜찮다”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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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그렇다. 나라 밖에서는 잇따라 경고음이 켜지는데 정부는 “경제가 회복 중”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온 빨간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다. 100을 밑돌면 앞으로 경기가 가라앉을 것임을 뜻한다. OECD가 얼마 전 발표한 이 지수 6월치는 99.2를 기록했다. 올 3월(99.9)부터 4개월 연속 100 미만이다. 지난해 3월 101로 정점을 찍은 뒤 15개월 연속 하락했다. 1999년 9월~2001년 4월까지의 20개월 연달아 미끄럼을 탄 뒤 최장 기간 하락 기록이다. 당시의 하락은 미국의 닷컴 버블 붕괴 여파에 따른 것이었다.

OECD 연속 경고에 정부는 “경제 회복 중” #‘반기업’ 벗어나 생산성 높일 대책 시급

장기간 하락보다 더 두려운 점은 이 지수가 족집게라는 사실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는 물론, 2000년대 초반의 신용카드 대란이나 2012년 내수 침체처럼 한국 내 요인 때문에 경제가 휘청인 것도 정확히 예측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보음도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연초 대비 10% 안팎 떨어졌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의 추격 또한 본격화할 조짐이다. 중국 기업 YMTC는 이달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술 시연을 하며 “내년부터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가격 ‘치킨게임’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미국 골드만삭스·JP모건·모건스탠리 등이 일제히 한국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가가 휘청거렸다. 반도체 묵시록이 현실화되면 치명상을 입는 건 한국 경제다.

여기에다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의 금리 인상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국제 경제 변동성도 급속히 치솟아 올해 들어 터키 리라화 가치가 70% 하락하는 등 신흥국 경제 위기는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자칫 한국 경제에 쓰나미가 닥칠 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태평스럽기만 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8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중심의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달 전 진단 그대로다. 안이하기 이를 데 없다. 국내에서는 최저임금 후유증으로 자영업 쪽에서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설비투자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자영업자도, 기업인들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는 괜찮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다. ‘반(反)기업·친(親)노조’적인 소득 주도 성장에 실패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두려워 “회복 중”이라고 엉뚱한 진단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유연하게 하며, 규제를 개선해 기업들이 혁신 산업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타를 틀어야 한다. ‘반기업·친노조’ 같은 이념에만 집착해서는 결코 경제를 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