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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우토반에서 한국차가 불타도 이랬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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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고속도로에서 BMW 차량 2대에 또 불이 났다. 정부가 리콜 대상 BMW 차량에 대해 운행 중단을 검토하는 와중에 벌어진 사고였다. 이로써 올해 불에 탄 BMW 차량은 36대에 달하게 됐다. 특히 이날 불이 난 BMW 차량 중 한 대는 리콜 대상도 아니었다. 엿새 전에는 안전진단까지 받은 차에서 불이 났다. ‘달리는 폭탄’이라는 말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사태가 이런데도 BMW의 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BMW는 화재 원인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의 결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된 EGR 모듈을 쓰지 않은 차량에서도 불이 나면서 다른 결함일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에는 디젤뿐 아니라 가솔린 차량의 화재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회사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결함을 의심하는 시선이 여전히 팽배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문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회사 측 말대로 EGR 장치의 결함이 원인이라 해도 문제는 남는다. BMW는 수년 전부터 국내 차량에서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해부터 이 장치를 바꿔 생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험성을 미리 알고도 지금까지 리콜 조치를 미뤘다는 이야기가 된다. 리콜 발표 전까지는 정부기관의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오만한 자세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허술한 국내 제도 탓도 있다.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벌금과 손해배상금으로 147억 달러(약 17조4000억원)를 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141억원의 과징금만 냈다. 징벌적 배상제와 집단 소송제 같은 강력한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이 국내 소비자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마따나 독일에서 달리는 한국 차가 연달아 불탔다면 한국 기업이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