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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계절에 복수의 허무를 말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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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호 32면

Beyond Chart | Theater

상업극으로 점철되고 있는 연극 예매 차트에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9월 4일~10월 1일 명동예술극장)이 돌아와 순수 연극의 숨통을 틔웠다. 2015년 초연된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개·폐막식 연출을 맡기도 했던 고선웅이 각색·연출을 맡아 동아연극상 대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연극계 주요상을 휩쓸고 2016년 원작자 기군상의 나라 중국에 초청돼 국가화극원 대극장을 가득 채웠던 웰메이드 대작이다.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로 18세기 유럽에 ‘동양의 햄릿’으로 소개됐던 고전을 가장 동시대적인 무대로 빚어낸 건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고선웅 연출의 힘이다.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의 손에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지켜낸 시골의사 정영의 평생에 걸친 복수의 여정을 담은 무거운 서사지만, 특유의 연극성과 ‘애이불비(哀而不悲)’의 휴머니즘으로 객석을 휘어잡는 고선웅 스타일이 생생하다. 원작에 없지만 고 연출이 추가한 캐릭터 ‘정영의 처’는 중국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작품의 백미로 꼽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의’의 이름으로 복수혈전이 난무하는 시대에 한바탕 웃음과 눈물로 복수의 허무를 논한다는 것이 가장 고선웅적이다.

초연과 재연에서 절절한 연기로 관객을 울린 하성광·장두이·정진각·이형훈 등이 그대로 합류해 뜨거운 감동을 전한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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