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8일 열리는 아시안게임서 남북 정상회담 무산

중앙일보

입력

오는 18일 개막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간에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 ‘미니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정부, 문 대통령 대신 이낙연 총리 참석키로 가닥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아닌 김일국 체육상 참석 #북이 고위급으로 바꿀 땐 총리급 접촉 가능성도

정부 고위 당국자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공식 초청을 받았지만 불참키로 했다”며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총리는 기존에 확정했던 일정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레트노 마르수디 외교장관으로부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인 새·코뿔소·사슴 인형을 선물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레트노 마르수디 외교장관으로부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인 새·코뿔소·사슴 인형을 선물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당국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막식에 올 경우 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을 검토했다”며 “두 정상이 인도네시아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미니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지만 두 분 모두 참석지 않기로 함에 따라 불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김창범 주인도네시아 대사와 안광일 북한 대사를 동시에 불러 양국 정상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 27일과 30일 각각 자신의 특사를 서울과 평양에 보내 공식 초청장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방한한 레트노 마르수디 외교장관(특사)에게 “일정과 여건을 고려해 판단하겠다”며 “내(문 대통령)가 가지 못하면 고위급을 보내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은 김 위원장의 인도네시아 방문을 의미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정부는 북ㆍ미 관계와 북한 비핵화 문제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정상이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남북 정상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올해 가을 추가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지만 자주 만나는 게 신뢰 형성과 난국 타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이 아시안게임에 공동으로 입장하고, 여자농구 등 일부 종목에 단일팀으로 참가키로 한 만큼 제3국에서 자리를 함께할 경우 상징적 의미도 있다는 평가를 해 왔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김 위원장을 초청하기 위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의 딸인 푸안 마하라니 인력개발문화조정장관(수석 장관)을 평양에 보내는 등 각별한 공을 들였다. 정부 당국자는 “인도네시아는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와 한반도 긴장 완화에 깊은 관심과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치일정을 이유로 김 위원장의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고, 북한산 석탄 수입 논란 등 현안이 발생한 것도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북한은 김일국 체육상을 자카르타에 파견키로 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총리급 회담도 현재로선 안갯속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와의 전통적인 우방 관계인 북한이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에 고위급을 파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일성 주석이 1965년 인도네시아 알리아르함 사회과학원 연설에서 '사상에서의 주체'라는 연설을 했다”며 “김 주석이 당시 인도네시아서 선물 받았던 꽃을 김일성화로 명명해 신성시하는 등 인도네시아와는 각별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9월 9일 정권수립 70주년 행사에 인도네시아 인사를 초청할 것”이라며 “이를 고려하면 앞서 열리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 고위급 인사를 보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럴 경우 남북이 가을 정상회담을 앞두고 총리급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을 대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용수ㆍ권유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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