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금액 늘자 힘들지만 안낼 수 없었다"|「일해」청문회 신문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 5공 특위의 일해 재단에 대한 청문회가 9일 자정 모두 끝났다.
이 날 청문회에는 기금조성과 관련된 재계인사 5명이 출석해 의원들의 신문에 응했다.
다음은 이 날 증언 순서와 역순에 따른 신문과 증언 내용 요지.

<정주영씨 증언>
◇안병규 의원(민정) 신문
-15억원씩 세 차례에 걸쳐 45억원과 일해 연구소 부지 6억5천만원 등 51억5천만원을 기부했고 제2 영빈관을 지어 무상 양여한 사실이 있는가.
『기부액과 연구소 건축 공사를 한 것은 사실이나 제 2 영빈관을 지어준 일은 사실과 다르다.』
-일해 재단의 설립 동기와 배경이 순수했다고 보는가, 아니면 전 전 대통령이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가.
『설립동기는 순수했다고 본다』
-발기인으로 선정된 동기는.
『재단 설립의 계기가 된 아웅산 참사 때 경제 4 단체장 중 한 명인 관계로 현장에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이 급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기 방으로 불러 앞으로 유가족을 돕는데 도와달라고 해 귀국 후 23억원을 모아 유족에게 분배했다. 재단을 만들자는 얘기는 그 뒤에 나왔다. 유가족을 돕고 순국한 분들의 뜻을 살리기 위한 재단을 만든다는 취지가 좋아 찬동했다』
-기금 모금에 양정모씨는 강제성이 있었다고 했고 장세동씨는 없었다고 상반된 증언을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낸 사람 각자가 각양 각색일 것으로 본다.』
-일해 설립과 관련한 증인의 태도가 긍정과 부정을 오가고 있다.
『왔다갔다한 적 없다. 23억원 모금 때는 자진해서 냈다. 1차 모금 때는 취지가 좋아 찬동했다. 그 후 돈을 받는 측은 1백억원씩 3년간 3백억원을 계속 모금한다고 했는데 나는 1백억원만 모으면 충분할 줄 알았다. 1백억원이면 재단을 운영해 나갈 수 있다. 처음 1백억원까지는 어렵지만 돈을 내자고 권장하는 편이었고 업체별로 할당도 해줬다. 3년 동안 1백억원씩 걷자는 것이라고 결정할 때 토론하거나 의논이 없었다. 협력한 것은 1백억원까지고 그 이후는 힘들지만 안 낼 수 없어 따라갔다. 2백억, 3백억, 5백억원으로 모금액이 늘어날 때마다 매우 힘들었다』
-서로 기부하기 위해 로비까지 했다는데.
『그런 일 없다』
-조성배씨는 정 회장이 모금 액을 정해주고 자기는 수금만 했다고 하는데.
『조씨가 누군지 알지도 못한다.』
-기금 할당은 증인과 정수창씨가 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 누가 1백억원을 모으라고 얘기한 적 없다. 1백억원이면 충분할 것 같아 안내는 사람도 예상해 모금 목표액을 1백억원 보다 조금 더 높였다』
-영수증은 받았는가.
『받아서 소비 처리했다』
-45억원은 개인 돈인가.
『회사 돈에서 냈다. 재벌 총수라고 45억원을 어떻게 가지고 있나』
-후회했나.
『낼 때는 섭섭하지만 돈이란 한번 내면 잊어버려야지 후회해서 무엇하나』
-기부금 납부 독촉을 했는가.
『나는 독촉을 받지 않았다. 2차 때부터는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많아 빨리 내라고 전화한 적은 있다』
-강제성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내 경우 1차 때는 날아갈 듯 냈고 2차 때는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냈다. 3차 때는 내는게 편할 것 같아 냈다』
-장세동씨와 같이 재단부지를 물색하러 다닌 적이 있나.
『장씨가 같이 가자고 해 장씨 차를 타고 정신 문화 연구원 근처 땅을 본적이 있다. 장씨가 여기는 뭐가 안 좋다면서 적당한 땅이 없겠느냐고 해 묶여있던 내 땅을 쓰라고 했다. 재단부지로는 1만∼2만 평 정도면 충분할 줄 알고 나머지는 내가 쓰려고 했는데 그것도 모자란다며 5만 평을 더 사겠다고 했다』
-토지 대금 6억5천만원을 장씨에게 자진 헌납했는가.
『돈을 받겠냐고 물어온 적도 없고 내가 땅을 살 때 값이 6억5천만원이라 영수증과 함께 등기 이전 서류를 넘겨줬는데 돈을 받은 적도 없고 돌려준 적도 없다』
-기부할 때 반대급부를 기대했는가.
『결코 없다』
-일부에서는 서해안 간척지 개발과 많은 수의 계약 등의 특혜를 받았다는데.
『간척 사업은 5공 출범 이전에 허가가 났다. 특혜를 받았다는 사항이 있으면 물어 보라』
-양정모씨의 주장처럼 기부금을 내지 않아 국제그룹이 해체됐다고 생각하는가.
『내게 물어볼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말한다면 국제 그룹해체는 잘못된 일이다.』
-앞으로 재단운영 방향이나 미래상에 대한 소견은.
『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 진은 다 물러가고 사회 각계의 존경받는 인사가 이사에 들어왔으면 한다. 20만 평 부지는 좁은 나라에서 사치이자 낭비라고 본다. 필요한 것만 빼고 나머지 당은 일해 못지 않게 훌륭한 일을 하는 공공 사회단체에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심완구 의원(민주) 신문
-실질적으로 모금을 위한 제의는 누가 했나.
『당시 전 경련 회장인 본인과 정수창 상의회장이 1백억원을 목표로 사실상 1백10억원 정도를 할당했다. 내지 못할 사람을 상정, 여유를 둔 것이다』
-일부 1백억원이 많다고 불평한 인사도 있다던데.
『1백억원 모금 얘기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한 것 같다』
-혹시 전 전 대통령이나 장세동씨 등이 한 것이 아닌가.
『첫 번에 1백억원이라는 거금의 모금얘기를 끄집어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본다. 내 생각이 그랬다. 그 이상으로 모금을 하게 되고 과욕을 하게되니까 결국 말썽거리가 된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후 전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 김 소장 등과 설립 당시 이사들이 재단의 장래 문제를 싸고 설왕설래가 있었다던데.
『전 전 대통령 옹호 측과 민주화 시대에 맞추어 정관을 고쳐 변신하자는 측의 대립은 있었다』
-정치 자금을 별도로 기부한 적이 없는가.
『선관위에서 모금할 때 그 때 그 때 내라는 대로 다 냈다』
-전두환씨에게 약 2백억원으로 추산되는 돈을 주었거나 뺏긴 것 같은데 후회되지 않나.
『그 돈들이 전부 없어진 게 아니고 살아있기 때문에 지금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반드시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전씨에게 할 말이 있는가.
『본인은 관심도 갖고 싶지 않고 그저 잊고 싶을 뿐이다.』
◇최무룡 의원(공화) 신문
-일해 재단은 전 전 대통령의 제안인가.
『그렇다』
-일해 재단 부지 헌납에 따른 양도 세까지 감수하면서 기부한 건 대통령이나 경호실장과 밀착하기 위한 게 아니냐.
『밀착이란 생각이나, 반대 급부는 생각한 일이 없다』
-국민은 증인이 5공에서 가장 혜택받은 정경유착, 해바라기성 기업인이라고 증인을 생각하고 있는데 양심의 가책은 없나.
『정경유착으로 노력 없이 혜택을 받은 일이 없어 미안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홍희표 의원(무소속) 신문
-일해 재단을 최초에 만들자고 뜻을 밝힌 건 누군가.
『유족을 돕자는 건 대통령이 말해 23억원을 거두었고, 그 뒤 재단을 만들어 가족을 살리자는 건 최순달씨 등 청와대에서 구상한 걸로 안다』
◇이성호 의원(민정) 신문
-조성희씨를 모른다고 했는데.
『기억 없다. 명함 교환하고 인사한 적 없다』
-정관이 변질됐다고 했는데 증인은 83년 12월부터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지 않나.
『거기에 대해 관심도 없고 만들어 내놓으면 통과만 했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4차나 정관이 바뀌어 유족생활 보호조항은 없어 졌다. 유족을 위해 만든 재단에 그것이 빠져 변질됐다고 했다』
-51억원을 투입하고 일해 내에 가장 발언권이 센 것으로 알려진 증인이 그런 말을 하니 이해가 안 간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 그랬다』
-88년 5월 4일 증인이 주도해 세종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지 않았나.
『그렇다』
-조금 전 전경련 3분의 1을 이사 진으로 포함해 민간단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 말과 어떤 연관이 있나.
『그건 내 희망사항이다. 이사장은 허수아비다. 연구소장이 모든 걸 다 하게 돼 있다』
-1차례에 걸친 이사회에 참석하면서도 정관을 보지 않았다는 건데 이사장이 된 이유는.
『소장이 「각하가 경제계 이사는 다 물러나고 새 사람을 임명하겠다고 한다」고 해 다 사임했다. 최종 이사회에서 「우리 사회의 저명한 사람이 이사가 되겠지만 전경련 회장이 당연 이사장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얼마 뒤 전 전 대통령이 이사 진을 임명했는데 나와 정수창·구자경씨 3사람이 이사로 들어갔고 남덕우씨 등 전직 장관과 전 전 대통령이 신임하는 사람이 대부분 됐다. 대통령이 구 회장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이사장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과거 일해에 출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김기환 소장이 나에게 수습을 부탁했으나 거절했다. 소장이 새 이사회 사회를 보면서 내 얘기는 무시하고 나를 회장으로 통과시켰다. 구 회장을 참가시켜 민간출연기구로 만들려했으나 벽에 부닥쳤다』
▲이기택 위원장=이사가 어떻게 구성돼있나.
『경제계에선 구 회장과 내가 있고 유족대표가 1명 있다. 8할이 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라 전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분위기다. 개혁시대에 맞추려는 생각인데 과거를 고집하는 사람과 있으니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 위원장=언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나.
『주무 부서인 외무부에도 얘기했으나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기다리고 있다』
◇손주환 의원(평민) 신문
-증인은 정부 권력기관이나 민정당이 돈을 달라는 대로 줬다고 했다.
『권력기관에서 달라는 대로 준 게 아니라 선관위에서 달라는 대로 줬다. 그렇다고 여당에 안 줬다는 건 아니다. 말하기 곤란해 않지만 여야 정치인에게도 줬다. 여건 야건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마음대로 돈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일해 이사장도 훌훌 벗으라.
『일해 이사장 감투 벗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진 뒤 그만두겠다』
-구 서울 고 부지를 당국과 교환하면서 1천억원 이상의 특혜를 봤다고들 한다. 원전 11, 12호기 수의 계약과 아산만 매립도 정경유착의 특혜가 아닌가.
『서울 고 부지는 30% 낮춰 감정하고 구의 동 쓰레기 매립 지는 30% 높여 감정했으며 우리가 원하지도 않은 교환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공개 입찰했다. 우리는 미 웨스팅 하우스, 캐나다 등의 하청으로 20년간 일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격을 얻었다』
◇노무현 의원(민주) 신문
-일해 공사현장에 나가봤나.
『3∼4번 나갔다』
-발주 측 감독이 현역 군인이었나.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시류에 순응한다는 건 힘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은가.
『이를테면 힘있는 사람을 도우는 건 아니다. 힘있는 사람에게 못 보여 괴로운 일 안 당하려는 것이다』
-일해가 사유물이거나 막후 권부라는 말이 돌아도 추종하다 그 권력이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독자적 입장을 밝히고 거스르는 입장을 밝히는 것도 시류에 순응하는 것인가.
『일해 재단이 계속 돼나갈 때 우리를 필요 없다고 했고 더 이상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돈 문제에 국한된다면 왜 6·29 이전에 바른 말 안 했나.
『우리는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해 죄송하다.』
-증인이 낸 돈이 전혀 이익과 관계없이 냈다고 생각하나.
『이제까지 결정적 나쁜 작용은 없었다.』
-정경유착 역할을 안 했나.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모르겠고 큰 기업이 10억원 정도 낸 것이 정경유착이 될 수 없다』
-경제적 이해에 이 돈이 전혀 영향은 안 미쳤단 말인가.
『현재까지 없다』
-증인은 5공 시절 기부금 총 2천6백억원 중 1백72억원을 기부한 게 사실인가.
『기록대로라면 인정한다』
-청와대에 이 것 말고 얼마나 냈나.
『그 외 낸 일이 없다』
-아까 공식 말고도 전혀 안 냈다고 할 순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여건 야건 개별적으로 친한 사람에게 줬다』
-전두환씨에게는.
『안 줬다.』
-증인보다 훨씬 작은 회사도 명분 없는 돈을 10억원씩 35억원이나 준 사실이 있는데 큰 기업이 이런 걸 안주고 배길 수 있나.
『우리는 큰 기업인만큼 모든 성금을 가장 많이 내고 다른걸 안 가져온다고 불만인지 모르나 그걸로 버틴다』
-지난 선거에 쓴 엄청난 돈은 증인 같은 사람이 안 주면 어디서 생기나.
『어디서 만드는 지 모르겠다』
-현대 정공 사건 때 안기부와 연결하며 서류를 탈취하고도 오히려 서류 작성자를 구속하고 현대 중공업에서는 차로 노동자를 고의로 밀었으나 교통사고 처리했다. 이게 현대가 행정부에 얼마나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정경유착을 보이는 것 아니냐.
『노 의원은 일방적 얘기만 듣고 우리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려는 것 같다』
-서정의씨 납치사건은 경찰이 자작극으로 몰다 뒤집어졌다.
『그건 현대 건설이 신문광고로 사과했다』
-전경련은 조세·토지 정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정부상대로 교섭을 하느냐.
『이제까지 의회주의가 정착되지 않아 주로 정부와 교섭해왔다』
-의회가 바지저고리였다는 건가.
『여태까지는 그랬다』(장내 폭소)
-거기다 정부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해 있으니 대통령도 사람인데 돈 받고 안 봐줄 수 있느냐.
『대통령은 법률에 맞고 국가이익에 맞으면 결제해야 원칙이다』
◇김현 의원(공화) 신문
-아웅산 유족 위로금을 나눠 준 뒤에 법인을 만들었나.
『나눠주고 만들었다고 안다』
-장세동씨는 땅 값으로 6억5천만원 짜리 수표를 가져와 증인에게 받으라고 했으나 안 받았다는데 수표는 봤나.
『서류에 전부 도장찍어 넘겼고 영수증은 받아 보지도 못했다』

<장치혁씨 증언>
◇김현 의원(공화) 신문
-회사의 현재 부채는….
『87년 말 현재 5백14억원이다』
-첫 기부금을 84년에 2억원 냈는데 그 때 동기는. 자진해서였나, 누구의 연락을 받고 였나.
『우리보다 큰 기업이 대부분 모금에 참여했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
-84년 2억원, 85년 5억원 낸 뒤 86년에 3억원을 내 전년도보다 적게 냈는데 그 이유는.
『처음 2억원은 자진해서 참여했으나 그 다음해 모임에서는 작년보다 상향해 내는 게 좋겠다고 얘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한번으로 알고 냈으나 2번, 3번 겹치다보니 부담을 느껴 가능한 적게 내려고 액수를 줄였다』
-처음엔 자진해서 냈으나 다음부터 강요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강요는 아니지만 간담회 분위기가…내심 내키지 않았으나 결국 냈다. 전년도보다 액수를 줄인 회사는 우리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익명의 5억원은 언제 냈는가.
『86년 12월 17일 청와대에 일해 기부금조로 냈다.』
-전씨에게 직접 전달했느냐.
『대통령 집무실 옆 접견실에서 직접 냈다
◇신재기 의원 (민정) 신문
-기부금 낸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
『장사하는 사람은 돈이 나갈 때는 아쉬워하지만 일단 돈이 나가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김봉욱 의원(평민)신문
-일해에 익명 기부를 하고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고 했는데 혹시 그냥 돈을 주었는데 일해 측에서 나중에 일해에 낸 것으로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닌가.
『아니다』
-재단에 낸 기금을 어음으로까지 낸 것은 강제성이 개재됐기 때문이 아닌가.
『강제성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현찰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음도 괜찮다고 했고 기업을 하다보면 통념상 어음발급을 선호한다』
-5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준 것이 아닌가.
『정치자금이라고 생각한 일이 없다. 성금을 늦게 낸 데다 깎아 내기도 했고 새마을 성금도 안 내다보니 꺼림칙해 당시 환경 상 이것들을 모두 합해 직접 전해준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강신옥 의원(민주) 신문
-일해 재단의 사업 계획을 누구로부터 처음 들었나.
『기업인 간담회 등에서 정주영 회장 등 재계원로들이 설명해 주었다』
-처음 낸 2억원도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라고 생각되지 않았나.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금을 계속 내기가 벅찼다』
-처음 낸 2억원도 준조세라고 할 수 있었는가.
『경제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4면으로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