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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개회식 주인공 한민수 "훌륭한 지도자 될게요"

중앙일보

입력

평창겨울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를 들고 점화대로 오르는 한민수. [뉴스1]

평창겨울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를 들고 점화대로 오르는 한민수. [뉴스1]

지난 3월 9일 열린 평창패럴림픽 개회식. 수많은 이들은 숨죽인 채 성화를 등에 메고 로프에 매달려 경사를 오르는 남자를 바라봤다. 한국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인 한민수(48). 한 쪽 다리는 의족이지만 그는 힘차게 팔로 줄을 잡아당겨 오르막 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성화를 평창올림픽 여자컬링 은메달리스트 김은정과 휠체어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에게 넘겼다.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긴 그가 미국으로 떠난다. 최초의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다.

한민수의 지도자 연수를 후원하기로 한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정영우 나노메딕스 대표이사. [사진 한민수]

한민수의 지도자 연수를 후원하기로 한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정영우 나노메딕스 대표이사. [사진 한민수]

한민수는 8일 미국으로 떠나 LA, 덴버, 피츠버그, 뉴욕, 라스베이거스를 돌며 2개월 간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5단계로 구성된 지도자 교육을 하나하나 밟는 코스다. 대표팀 선수 출신으로 연수를 떠나는 건 한민수가 처음이다. 한민수는 "예전부터 미국이나 캐나다의 선진 하키를 배우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민수는 "패럴림픽 이후 미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는데 지인의 도움으로 전 세계아이스하키협회장과 연락이 닿았다.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프로그램을 소개시켜줬다"고 했다.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정영우 부회장(나노메딕스 대표이사)도 흔쾌히 1년간 후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전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미국 지도자 연수 떠나

한민수는 장애인하키 1세대다. 두 살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다. 서른 살 때 무릎 골수염이 심해져 다리를 절단했다. 2000년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그는 18년 동안 묵묵히 얼음을 지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선 평창패럴림픽에선 마침내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다. 아내와 두 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흘린 그를 보며 모든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한민수는 "패럴림픽 이후 많은 분들이 장애인하키에 대해 알게 됐다. 선수 출신 지도자가 없으니 내가 후배들을 위해서 힘든 길을 열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평창 겨울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애국가를 부르는 한민수. 장진영 기자

평창 겨울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애국가를 부르는 한민수. 장진영 기자

무작정 시작하는 건 아니다. 한민수는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일반 아이스하키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2014년엔 하키 선수 중에서는 처음으로 비장애인을 위한 체육지도사 코스를 밟았다. 2015년에 신설된 장애인 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해외 연수를 대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했다. 한민수는 "시간을 조금씩 내긴 했지만 영어는 아직 어렵다. 미국으로 가는 게 결정된 뒤엔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웃었다.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장애인 선수를 위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민수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비장애인 지도자들의 경우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비장애인은 백스케이팅을 할 수 있지만 썰매를 타야하는 장애인 선수는 할 수 없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평창 겨울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애국가를 부르는 한민수. 장진영 기자

평창 겨울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애국가를 부르는 한민수. 장진영 기자

패럴림픽이 끝난 뒤 한민수는 쉴 틈 없이 전국을 누볐다. 기업, 학교, 운동부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눴다. 최근에는 외교부로부터 문화외교자문위원으로도 위촉됐다. 한민수는 "한국엔 250만 명의 등록장애인이 있다. 그 중 중도장애인이 90%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전하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줬고, 나도 기뻤다"며 "장애를 입은 이들에게 체육만큼 좋은 게 없다. 몸이 건강해지면 자신감도 생기고, 장애에 대한 열등감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한민수는 "지도자가 된 뒤에도 강연은 틈틈히 할 생각이다. 훌륭한 지도자이자 장애인스포츠를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웃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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