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6억벌어…“이젠 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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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젠 쉬고 싶다.』
WBC 라이트플라이급타이틀을 15차 방어한 강정구(26)는 자신의 건강과 새로운 인생설계를 위해 화려한 링의 왕자자리에서 미련없이 떠나기로 했다.
장은 이체급 최다타이틀방어(종전 일본「구시켄·요코」13차)의 위업을 이룩해 WBC로부터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차 방어까지 가능하다던 그가 갑자기 충격적인 타이틀 반납을 선언했다.
지명방어전을 세차례나 연기한 장정구는 WBC로부터 타이틀 박탈의 경고까지 받고 있다가 박탈보다는 명예로운(?)퇴진을 결정한 것.
은퇴를 결심한 강정구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은퇴결심은 언제부터 했나.
▲85년 결혼이후부터 권투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뼈를 깎는 훈련과 살을 찢는 듯한 감량의 고통을 견뎌야 하고 막상 대전에 임해서는 쓰러뜨리느냐 쓰러지느냐의 살벌한 승부를 벌여야 한다.
매번 링에서 내러올 때마다 너무 힘들어 『권투를 집어치워야지』하고 생각했다.
-왜 은퇴시기를 지금으로 잡았나.
▲2∼3년 전까지만 해도 불면증과 신경쇠약은 있었지만 하루쯤의 불면은 사우나등으로 곧 회복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하루잠을 설치면 일주일 연습이 도로아미타불일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다. 게다가 왼쪽눈 마저 장애를 일으켜 상대의 주먹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현상마저 왔다. 이 때문에 고민 끝에 지금 반납키로 결심한 것이다.
-누구와 은퇴문제를 상의했나.
▲원래 성격이 외곬이고 독불장군타입이어서 혼자 결정을 했다. 가족들은 전부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권투를 만류해 왔다.
-그러나 한차례방어전에 거금 1억원이 보장되는 타이틀을 헌신짝처럼 반납한 이유가 석연치 않은데 진짜이유는 무엇인가.
▲건강이 첫째이유다. 그러나 권투에 회의가 온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한대로 성격이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전혀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다. 그 동안 권투선수생활을 해오면서도 권투이외에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15차 방어까지 오면서 방어전날짜가 결정되면 상대선수와의 경기에 대비한 훈련과 작전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방어전을 치렀는지 모르지만 그러다 보니 신경은 극도로 피로해지고 불면의 고통이 뒤따라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였다. 최근 들어 권투만을 위한 인생을 회의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13년동안 나는 권투이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온 것 같다. 돈을 번들 무엇하나. 쓸 시간도 없고 체중 때문에 마음껏 먹을 수도 없었다.
챔피언이 되고부터는 사생활도 없었다. 심지어 여름(3살)이 엄마와의 결혼때도 마치 도둑장가 가는 식으로 숨어서 해야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은퇴를 결심하게된 동기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챔피언 강정구의 짐을 벗고 26살의 자연인 장정구로 살고 싶다. 멀어진 친구들도 다시 찾아보고 두 아이의 아빠노릇도 충실히 하고 마음껏 내 나이에 걸 맞는 인생을 살고 싶다.
세상의 매운맛, 달콤한 맛을 모두 경험한 뒤에 혹시 힘이 있다면 다시 링에 복귀하겠다.
-8년간의 프로선수생활로 얼마쯤 벌었나.
▲그동안 번 돈은 약6억원 정도다. 그러나 생활비등으로 많이 써버렸고 지금은 올해1월에 일죽에 구입한 땅6천평과 자동차·전세금(8천만원) 정도에 약간의 예금이 있을 뿐이다. <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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