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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자 못 구한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 끊은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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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자료사진. 해당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소방관 자료사진. 해당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사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구조되지 못한 사람이 숨지는 장면을 지켜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에 대해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함상훈)는 소방관 A씨의 아내 B씨가 순직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고 5일 밝혔다.

소방관인 A씨는 지난 2015년 11월 승합차가 토사에 매몰된 사고 현장에 출동했다. 당시 승합차 탑승자 6명 중 5명은 구조됐지만 1명은 질식사했다. 이를 지켜봤던 A씨는 한 달 뒤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B씨는 2016년 4월 A씨가 공무상 재해로 사망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사망과 공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재심위원회 심사를 청구했지만 이 역시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는 매몰현장 구조작업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 등이 결여되거나 저하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구조하지 못한 1명이 질식사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5명을 구조한 이후 사망자의 시신을 차에서 꺼내는 작업을 했다”며 “당시 현장은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공무원연금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가 병원에서 수면장애 진단을 받는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데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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