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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업법 9조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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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겸 교통팀장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겸 교통팀장

국내에 비행기를 도입하고, 항공사를 차려서 운영하는 기준과 절차 등을 규정한 ‘항공법’은 1961년 3월에 제정됐다. 현재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국내 항공시장의 모태가 된 법이다. 당시엔 우리 항공산업이 워낙 취약했던 탓에 정부의 강력한 보호가 필요했다. 항공법 6조(항공기 소유에 대한 제한)에 외국인이나 외국 정부·공공단체, 외국 법인이 대표이사 또는 임원의 4분의 1을 넘거나 주식의 25% 이상을 가진 경우는 국내에서 항공사업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69년 5월 이 조항에 큰 변화가 생긴다. ‘임원의 4분의 1 이상’과 ‘주식의 25%’가 각각 ‘임원의 2분의 1 이상’ ‘주식의 50% 이상’으로 완화됐다. 항공법에 밝은 한 법조인은 “당시 정부에서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관련 규정을 손본 것”이라며 “외국인 지분이나 임원 수가 절반만 안 넘으면 되지, 25%는 너무 과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뒤 별로 달라지지 않았던 항공법 조항에 ‘엉뚱한’ 내용이 삽입된 건 91년 말이다. 항공법 114조에 외국인 임원(등기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경우 항공운송업 면허를 줄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간 것이다. 종전까지는 면허 취소 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또는 파산·금치산 선고를 받은 사람이 임원으로 있는 경우로만 결격사유를 한정하고 있었다. 이는 69년 외자 유치를 위해 관련법 조항을 바꿀 때의 취지와 정면충돌하는 내용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렇다 할 문제 제기 없이 법 개정이 이뤄졌다. 항공업계와 법조계에서는 “당시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런 모순이 왜 안 걸러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문제의 이 조항은 현행 항공사업법 9조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대한항공 계열의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와 화물전문 LCC인 에어인천이 면허 취소 위기에 몰려 있는 게 바로 이 조항을 위반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진에어는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6년간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사실이, 에어인천은 러시아인 임원이 2년여 동안 근무한 게 적발됐다. 두 항공사가 법을 위반한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지면 강력한 행정처분을 피하긴 어렵다. 법을 어긴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항공사업법 9조의 조항도 그대로 두기는 곤란할 것 같다. 기업의 외자 유치가 활발한 국제화 시대에 한참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항공사의 법 위반은 그것대로 처리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시대에 안 맞는 법 조항 역시 손질이 절실해 보인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겸 교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