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주년 기념일에 … " 부인 실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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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대위의 유가족이 5일 수원 제10 전투비행단으로 들어가고 있다. NPOOL경인일보=한영호 기자

김도현 대위가 '하늘의 수호신'이 된 5일은 결혼 4주년 기념일이었다. 김 대위는 "에어쇼를 마친 뒤 조촐한 기념식을 하자"고 부인과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사고 소식을 들은 부인은 실신하고 말았다. 부대 의무대로 실려가 안정제를 맞았으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날에 아빠를 잃은 두 아들 건우(4).태현(3)은 엄마가 갑자기 울부짖자 함께 따라 울다 이웃집에 맡겨졌다.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건우 형제는 이웃집에서 천진난만하게 놀아 주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빈소가 차려진 공군 제8전투비행단 관사 309호 자택은 사고 직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인.장모 등 친인척들이 몰려와 눈물바다를 이뤘다. 울산에 사는 김 대위의 부모는 5일 밤 늦게 도착해 그의 영정을 올렸다.

함께 비행했던 블랙이글팀의 김태일 소령은 "오늘 비행을 나가면서 안전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는데, 김 대위는 어린이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김 대위는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공군의 기둥이 될 모범 파일럿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에어쇼를 보기 위해 수원비행장을 찾았다가 사고를 목격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충격은 더했다. 이들은 "관람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김 대위가 살신성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뉴스로 접하고 말문이 막힐 정도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원주 8전투비행단은 이날 오후 6시30분 기지 체육관에 김 대위의 분향소를 차렸다. 그의 시신은 오후 4시쯤 원주 기독병원에 안치됐다. 김 대위의 시신은 훼손이 심해 5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일부만 수습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폭발해 신체 일부와 조종복 조각 등이 그가 남긴 모든 것이었다고 한다.

김 대위의 영결식은 8일 오후 원주 8전투비행단 부대장으로 치러지며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공군본부는 공군 홈페이지(www.airforce.mil.kr)에 사이버 분향소를 설치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사이트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고인의 숭고하고 뜻깊은 희생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하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네티즌 윤춘식씨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순직한 김도현 대위는 블랙이글팀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졌었다. 김 대위는 생전에 블랙이글팀을 취재한 한 작가에게 "블랙이글팀 전입 제안을 받고 다리가 부러져 5~6개월 동안 비행도 못했지만 블랙이글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며 "하지만 블랙이글팀은 나를 기다려줬고, 그간의 정신적 방랑을 끝냈고 인생의 전화위복을 맞게 됐다"는 말을 남겼다. 김 대위는 그렇게도 원하던 블랙이글팀에 들어간 지 1년3개월 만에 '하늘의 영웅'이 됐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수원.원주=전익진.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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