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읽기

죽음 앞에서 분열되는 마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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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모든 죽음은 슬프다.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죽음이란 어디에도 없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과 가족의 사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우리의 공유된 운명을 환기시켜주는 공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개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 죽음은 갈등과 충돌의 일시 정지를 가져온다. 죽음 앞에서 의견과 이해의 차이는 사소해진다. 망자에 대한 예의 때문만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우리가 모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보수·진보 불문하고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 존재 #다만 ‘무엇이 도덕인가’의 판단 기준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어떤 죽음 앞에서는 사람들이 분열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과 조롱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사람들도 버젓이 살아 있다’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는 데 반해, 어떤 사람들은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미화될 수 없다’는 마땅하지만 차가운 말을 하는 것일까? 서로의 상대 진영은 서로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도덕적일까? 죽음 앞에서 분열하는 마음들의 작동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천성적으로 도덕적 존재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도덕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은 모든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 판단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의 표현대로, 인간은 ‘의로운 마음(righteous mind)’을 품은 존재다. 우리는 각자의 기준에 의거해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존재다.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문화 특수적이며 또한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비도덕적인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누군가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도덕성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의 기초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어느 정치인의 자살 앞에서 자신에 대해 너무 완벽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충분치 않다. 만일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스스로에게 아무런 도덕적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우리 모두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추구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다만 우리는 도덕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하이트의 이론을 빌려 보자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집단에 대한 충성,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종교적 순수성을 도덕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집단을 배신하는 것, 권위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 그리고 소위 ‘성스럽지 못한 것’을 도덕적이지 않은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과 공정성을 가장 중요한 도덕적 판단의 기초로 삼는다.

보수의 도덕적 기초가 국지적(local)이라면, 진보의 도덕적 기초는 보편적(universal)이다. 따라서 보수는 ‘우리와 우리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라면 어떤 행동도 옳다고 보지만, 진보는 ‘우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어떤 개인에게든 피해를 준다면 옳지 않다고 여긴다. 법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그것이 조직과 상사를 위한 일이라면 이해될 수 있다고 믿으면 보수적 마음의 소유자이고, 인종·성·나이 등 어떤 이유로도 한 개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믿으면 진보적 마음의 소유자다.

따라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행위는 보수적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자기 때문에 조직이 피해를 보는 것, 자신을 위해 조직을 배신하는 것이지만, 진보적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보편적 원칙을 어기는 행위가 된다. 보수적 마음의 소유자가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보수적 마음의 소유자도 진보적 마음의 소유자처럼 타인을 돌보고 정의를 추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다만 그것이 집단과 권위의 문제와 상충될 때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도덕성의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도덕적 판단의 기초가 다르다고 이해하게 되면, 상대 진영을 향해 같은 잘못을 범하고도 자살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거나, 자살로 모든 잘못을 덮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며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본성적으로 도덕적인지를 간과하는 행위이자, 서로 간의 갈등과 대립을 더 악화시키는 행위다.

서로가 가진 도덕성의 수준이 아니라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죽음 앞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망자와 유족에 대한 예의이며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원적 질문, 바로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그 근원적 질문에 임하는 자세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