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에어쇼 전투기 추락 … 관람객 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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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대위

①블랙이글팀 소속 전투기 두 대가 '나이프 에지'를 보여주고 있다. ②한 대의 전투기는 정상적으로 급상승했으나 김도현 대위가 모는 전투기(왼쪽)는 고도를 상승시키지 못하고 있다. ③김 대위의 전투기가 잔디밭으로 추락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다. 어린이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보인다. [MBC·YTN 촬영]

5일 오전 11시 51분. 경기도 수원시 공군 10전투비행단 수원비행장. 어린이날을 맞아 에어쇼를 하던 공군 블랙이글팀 소속 A-37B 전투기 6대 중 2대가 관람석 좌우에서 연무를 내뿜으며 관중석을 향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두 대의 전투기는 스치듯 'X자'로 교차했다. 그러면서 전투기 동체를 한 바퀴 돌렸다. 관람객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고난도 기술인 '나이프 에지(Knife Edge)'를 마친 두 대의 전투기 중 한 대는 곧바로 급상승해 정상 궤도를 찾았다. 그러나 관람석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지나가던 전투기는 지상 330m 공중에서 요동을 쳤다. 그리고 고도를 올리지 못하고 비틀대며 활주로와 보조활주로 사이 잔디밭으로 추락했다.

관람석에서 불과 1.8km 떨어진 지점이었다. 당시 활주로 주변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1300여 명이나 있었다.

공중곡예 장면인 줄 알고 보던 관람객들은 "어어어…"하며 안타까운 소리를 내다 추락 전투기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자 "악"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조종사 김도현(33.공사 44기.소령 진급예정자) 대위는 탈출을 포기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전투기 조종석 의자는 '이젝션 시트(ejection seat)'로 유사시 손잡이만 당기면 의자째 공중으로 치솟아 조종사가 탈출할 수 있다. 에어쇼 도중 추락 사고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 같은 사고 상황은 공군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추락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민가와 관람객에게는 피해를 주지 말라'는 블랙이글팀의 수칙을 죽음으로 지켰다. 김 대위의 숭고한 죽음 덕분에 관람객들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다.

공군 관계자는 "김 소령이 평소 훈련받은 대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관람객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탈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김 대위의 희생과 결단 때문에 대형 참사를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위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한 블랙이글팀의 영웅"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군은 추락 원인이 기체 결함인지 조종 실수인지를 가리기 위해 정밀 조사 중이다. 공군은 사고 직후 사고 기종의 비행을 전면 중단했다.

◆ 김도현 대위=1996년 임관 후 1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진 에이스 조종사였다. F-5 전투기를 몰다 지난해 2월 블랙이글팀으로 옮겨 6번기에 배치됐다. 김 대위는 생도 시절 전대장(연대장)을 지냈고, 4등으로 졸업해 합참의장상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동기회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탁월했다. 그는 '비행은 항상 겸손하게'라는 블랙이글팀의 비행 신조를 지켜왔다. 부인(29)과 세 살.네 살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생전에 주위에 "나도 언젠가 블랙이글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많다. 막상 제안이 왔을 때는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라 절망적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친지들이 전했다.

◆ 나이프 에지(Knife Edge)=A-37B 2대가 공중에서 지상 300~400m까지 급강하 한 뒤 마주보고 부딪칠듯이 교차하는 고난도 공중기동 기술이다. 교차하는 순간에는 항공기가 서로 배쪽을 보이며, 완전히 한 바퀴를 회전해 수평 상태에서 다시 상승한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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