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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뮤지컬 '콘보이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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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토록 지독한 공연을 본 적이 있던가. 신개념 뮤지컬 '콘보이쇼'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왜 일본에서 20년간 롱런할 수 있었는지,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할 공연"이라고 극찬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4일 한국 배우들로 새롭게 꾸며져 첫선을 보인 '콘보이쇼'의 초반부는 다소 헐거웠다. 칸트.사르트르.프로이드 등으로 이름 붙여진 출연진들의 대사는 대화가 아닌 독백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그러나 이런 삐걱거림을 일거에 날린 것은 '몸'이었다. 공수부대 특수 훈련 받듯 일곱명의 출연진은 정말 '빡세게' 굴렀다. 백댄서 못지 않은 현란한 테크닉은 기본이었고, 탭댄스.타악 퍼포먼스.아크로바틱.노래 등 2시간을 인터미션없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땀방울 뚝뚝 떨어지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가쁨 때문에 노래가 끊어져도 '날 것'이 주는 저릿함은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특히 윌리엄 워즈워드.양인자.유재하 등의 시 혹은 노래 가사를 온몸으로 형상화하는 대목은 압권이었다. 내러티브로는 전달할 수 없는 상상력의 공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연출을 맡은 최형인(한양대) 교수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배우들이 자랑스럽지만 너무 안스럽다.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공연"이라고 했다. 일본에선 출연진 교체 없이 20년간 했다는 말에 소름이 끼쳤다. 꼼수도 없고, 멋부리지 않은 채 그저 우직하게 미는 무대. 스타는 고사하고 뮤지컬 매니어라도 좀체 알 수 없는 무명 배우들이지만, 온 몸 던지는 그들의 '헝그리 정신'에 경외감마저 든다. 새삼 영화.드라마 등 영상 매체가 아닌, 공연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끔 했다. 5월 놓치기 아까운 무대다. 20일까지 서울 백암아트홀. 02-3444-9969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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