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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예술 맞냐고 ? 아무렴 어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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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
낸시 랭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184쪽,1만1000원

시쳇말로 '대략난감'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가슴선을 드러낸 노출패션으로 대중 매체를 누비는 '청담동 키즈'. 다른 한편으로는 란제리 차림으로 초대받지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2003)를 찾아가 퍼포먼스를 펼친 용감무쌍 아티스트. 팝아티스트 낸시 랭(27)이다. 그녀는 책에서 "'당신은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성찰을 담보한 팝 아티스트인가, 아니면 엔터테이너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이렇게 쓴다. "아무렴 어떤가, 당신들이 행복하다면!"

그녀의 답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미술은 생쑈"이고 "최고 미술품은 명품(브랜드)"이라며 "아이 러브 달러!"를 외치는 그녀를 일체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은 도발적 아티스트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날로 이벤트화하는 현대미술의 상업적 아이돌이라고 할 것인가.

책은 제목과 표지부터가 '낸시 랭스럽다'. 표지속 낸시 랭은 제목 그대로, 비키니 상의를 걸친 핀업걸(벽에 핀으로 꽂아놓고 보는 섹시한 여자의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초상이 프린트된 비키니 상의다. 책은 가벼운 필치로 '걸어다니는 팝아트'를 자처하는 낸시 랭의 '탈엄숙 미술론'을 펼친다. "낸시 랭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유아적 필체를 쓰거나 독자에게 "쪽""뽀뽀" 등을 마구 날리기도 한다. "예술도 비키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그녀는 유명해지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 돈과 명품 숭배도 감추지 않는다.

"미술은 인정투쟁 혹은 욕망이다. 어차피 달러가 세상을 지배했다면 나는 달러를 지배하겠다. 아이 러브 달러, 쪽!" 미와 소비 사이에 등호를 긋기도 한다. "아름다움이 밥 먹여주는 세상, 보여지는 것이 전부다. 현대사회에서 미는 더 많이, 더 고급스럽게 소비하는 것과 정확히 비례한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미를 향유하는 것이다." 미의 상징 비너스상을 갤러리아 백화점 로고가 새겨진 포장지위에 프린트한 뒤 비너스에게 쇼핑백을 들린 그의 작품 '쇼핑하는 비너스'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낸시 랭은 뉴욕에서 태어났고 홍익대를 졸업했다. 한국 이름 대신 낸시 랭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패션브랜드 '쌈지'의 아트디렉터를 겸하며 국내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낸시 랭' 브랜드를 선보였다. 방송출연과 CF 활동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팝아이콘. 현재 케이블TV m.net의 '트렌드 리포트 必'의 진행을 맡고 있다.

책은 엔터테이너와 아티스트의 경계에서 욕망과 소비,스타덤, 그리고 컴플렉스 없는 무한한 자기애 등을 키워드로 하는 한 세대의 얼굴을 비춘다. 얼핏 그녀를 '아티스트 효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낸시 랭은 소비주의와 쾌락주의, 유아적 자기중심주의가 결합된 미디어상업주의 시대의 한 초상이다. 가식없는 솔직담대함에 손들어주고 싶은가, 아니면 선뜻 동의하기 힘든가. 다시 그녀의 말을 빌린다. "아무렴 어떤가, 그녀가 행복하다면!"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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