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바람직한 문 대통령의 여름 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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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30일부터 5일간 여름 휴가를 떠난다. 전후 주말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9일간에 이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에도 주말을 붙여 열흘가량 휴가를 떠나 닷새 안팎 휴가에 그쳤던 전임 대통령들과 대조를 보였다. 지난해 대선 당시 “근로자들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나부터 법에 정해진 21일의 연차를 다 쓰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도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여전히 휴가 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들은 평균 연차휴가 15.1일 중 반토막(7.9일)밖에 쓰지 못했다. ‘직장 내 분위기’(44.8%)가 핵심 이유였다. 문 대통령이 2년째 장기 휴가를 간 것은 특히 이런 점에서 돋보인다. 윗사람이 솔선수범해 휴가를 가야 아랫사람이 마음 놓고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휴가 장소나 독서 목록 등 과거 청와대가 대통령 휴가 때마다 밝혀온 디테일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 또한 신선하다. 휴가를 떠나면서 행선지를 회사에 알리거나, 카톡으로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매달리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 대통령의 ‘스텔스 휴가’는 이런 잘못된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휴식 그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휴가’가 정착되는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한 해 평균 67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30일씩 휴가를 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에만 17일간 휴가를 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매년 짧게는 열흘, 길게는 2주일씩 여름 휴가를 간다. 대통령·총리가 충분히 재충전을 해야 참신한 구상이 나오고, 국정이 새 동력을 얻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도 재충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벽에 부딪히고,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번 휴가가 이런 현실을 숙고하고, 난제들을 극복할 비전을 얻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