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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보다 분배" 다시 '좌향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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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동자의 날'이던 1일 중국 각지에서 몰려온 중국인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국기 게양식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중화민족·애국심을 유달리 강조하면서 민족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자 국기 게양식을 보러 오는 사람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당 서기가 직접 나와서 우리를 만나줘 정말 의외였다."

중국에 투자한 한 외국기업 경영자가 지방을 돌아본 뒤 지난달 베이징(北京)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소감이다. 보통 성장(省長)이나 시장이 나서 외국 기업인들을 만나던 관례가 지난해부터 당 서기가 만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관계자도 "지방을 방문하는 외국기업인이 전혀 접촉할 수 없던 당 서기가 직접 나서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당정 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다. 당이 조직과 인사를 쥐고 각 정부 단위를 통제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장쩌민(江澤民) 시대까지는 당의 이러한 기능이 다소 느슨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정부 들어서 당의 통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방에서 당 서기가 성장과 시장 등을 제치고 외빈을 직접 면담하는 사례는 이를 반영한다.

◆ 보수화 흐름=서구에선 통상 우파가 보수로 분류되지만 중국에서 보수는 좌파다.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면서 레닌주의적 성향, 즉 당의 일당 독재 이념을 견고하게 유지하자는 쪽이다. 지방 당 서기가 전면에 나서 각 부문의 정책을 총괄하고 감독하는 등 당의 통제 경향이 강해지는 게 최근 중국의 흐름이다. 아울러 외자 유치에서 지방의 권한을 최대한 살려주던 분권주의 경향도 최근에는 중앙에 의한 직접 통제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고속성장보다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는 후진타오 정부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층 강화되는 추세다. 2004년 헌법에 오른 사유재산권의 하위법인 물권법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중국 사회의 자본주의화를 우려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 사회.도덕.애국주의=중국 지도부가 이끄는 정치의식의 지향은 후진타오 주석의 '팔영팔치(八榮八恥)'로 집약된다. 사회주의와 애국주의, 아울러 도덕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3월 발표된 뒤 지금까지 언론의 요란한 보도에 힘입어 각급 학교 청소년과 정부 단위, 인민해방군에 전파되면서 중국판 '국민교육 헌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25년 동안 진행돼 온 개혁.개방의 여러 부작용을 추스르기 위한 중국 지도부의 선택"이라며 "당의 통제 강화와 애국.사회주의 이념 교육 확대로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개혁.개방이 낳은 중국 사회의 개인적이면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법치도 사회주의 틀 안에서"=4월에는 '사회주의 법치론'이 등장했다. 법치를 위한 법제와 치안 조직 정비, 업무 효율을 강조하는 자리에서다. 여기서도 역시 "중국의 법치 제도 건설이 '당의 지도' 아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당 우선의 이념을 확인했다. 사회주의 이념 틀을 넘어서는 법치에 관한 논의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가이드 라인'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주의 법치론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의 정치 발전 때문이다.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강조한 마오쩌둥(毛澤東)식 '인민독재론' 이후 덩샤오핑.장쩌민 시대를 거치면서 당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는 '민주집중제'가 활성화됐다. 내부 의사 결정 절차를 민주적으로 하는 '기술적 민주주의'가 골간이다. 그러나 후진타오 정부 들어서 기대를 모았던 대중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대중 민주주의'는 물 건너간 분위기다. 정치 발전에 관한 한 과거 지도부의 틀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도도한 사회주의 물결=당과 정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최근 중국은 완연히 사회주의 이념으로 돌아가고 있다. 덩과 장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전후에 공산당이 혁명을 이끌었던 전국의 100개 지역은 2004년부터 '붉은 여행(紅色旅遊)'코스로 자리 잡았다. 일부 지역은 성역화한 뒤 각 지방 간부와 청소년의 '필수 여행 코스'가 됐다. 개혁.개방의 여파로 자본주의에 물들고 있는 청소년과 관료를 '사회주의 건국 이념'으로 재교육하기 위한 장치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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