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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의경 스스로 목숨 끊어…인권위 근무 매뉴얼 마련 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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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를 받던 의경이 근무 압박으로 자살을 시도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 국가인권위가 경찰청에 복무 관리 매뉴얼 등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타살 및 가혹 행위에 대한 의혹은 기각 결정

심한 우울증으로 지속적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해오던 A의경은 공항경찰대에서 복무 중이던 지난해 5월 13일 서울 강서구의 공항경찰대 화장실에서 군화끈으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 이후 A의경은 인근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지만 11일 후인 5월 24일 사망했다. 이에 A의경의 부모가 부대에서 구타나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A의경이 복용했던 정신과 치료용 약 4가지 모두가 졸음, 주의력 저하, 현기증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을 포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약 복용시 야간 및 새벽에 업무적 기능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A의경은 사고 발생 이틀 전인 5월 11일 저녁 정신과 처방 약을 복용하고 12일 새벽 일어나지 못해 불침번 근무를 서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중앙포토]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중앙포토]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한 A의경의 동료는 “5월 8일 A의경이 새벽에 불침번을 서다가 잠을 자서 근무 태만으로 인한 사유서를 쓰는 것을 봤으며, A의경이 ‘불침번 서다가 졸았다’ ‘약이 센 것을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동료 의경은 “피해자가 자대에 배치를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병가를 가니까 피해자에 대해 대원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A의경은 자살 충동이 있다는 심리 검사 소견에 따라 관리 대원으로 지정됐으며 치료를 위해 병가를 다녀온 뒤 친구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부대 측은 또한 A의경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불침번 근무를 4회 실시했으며, 근무 중 졸아서 사유서를 제출 한 적은 있으나 근무소홀로 폭언과 질책을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경찰청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대원들에 대한 복약 관리를 권고했다. 또 A의경이 복약한 상태에서 총기를 소지한 채 4차례나 근무한 사실이 확인돼 정신과 처방약 복약근무자에 대한 총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부대 측 관리 소홀로 사망한 대원에 대해서는 순직 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휘 책임자였던 부대 내 관리자는 주의 조치를 받았다.

다만, 수사 및 부검 결과와 법의학연구소 자문 등을 종합해 볼 때 피해자에 대해 구타 및 가혹행위가 있다거나 그것이 피해자의 사망원인이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타살 및 가혹 행위에 대한 의혹은 기각 결정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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