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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나무 그늘에서

중앙일보

입력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늘 같은 사람
그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조병화 시 ‘나무 그늘에서’ 중에서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회현 사거리 우리은행 본점 글 판에 이리 적혀있습니다.
이 글 덕에 그림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빛과 그림자는 숙명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조합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이를테면 빛은 주연, 그림자는 조연 격입니다.
조병화 시인에 의하면
[빛을 돋보이게 하는 그림자, 그들이 있어 행복합니다]로 이해해도 좋을 듯합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소나무 그림자입니다.
빛이 아니라 그림자가 주연인 사진입니다.
그래서 그림자가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림자 부분의 질감이 보이게끔 노출을 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빛을 받은 부분이 노출 과다로 하얗게 변하면서 그림자만 두둥실 떠 있듯 남았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의 조절만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표현되었습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휴대폰 카메라가 자동으로 계산한 사진입니다.
일반적으로 휴대폰은 빛과 그림자의 적절한 비율을 계산합니다.
이때 대체로 그림자 부분은 질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이는 빛을 주연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부분을 밝히고 싶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자동으로 설정된 휴대폰에서는 어두운 부분을 터치하면 어두운 부분이 밝아집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길가 가로수입니다.
구름 한 점 거치지 않은 땡볕이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열하는 태양입니다.
그림자 부분이 밝아지게끔 휴대폰 카메라를 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땡볕이 내리쬐는 차도와 인도가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반면 그림자 속은 또 다른 세상으로 남았습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요즘 만나는 아름드리나무 그늘은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무 그늘에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도 그 많은 고난의 속세에서 살아남아,  
이만큼의 큰 그늘을 내리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인내로운 세월을 견디어 냈으리,
하는 생각에, 고마움 한량없어라]

나무 그늘에서 한 중년 남성이 부채를 부치며 쉬고 있습니다.
한참 후 젊은 학생이 그늘로 들어와 중년 남성의 옆에 앉습니다.
그 젊은 친구는 더위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중년 남성이 젊은이에게 부채질합니다.
정겨운 나무 그늘 안 풍경입니다.
그 그늘 안에서 중년 남성은 ‘나무 그늘 같은 사람’마냥 여겨졌습니다.

나무 그림자/ 201807

나무 그림자/ 201807

정오의 빛이 만든 제 그림자를 봅니다.
생기다 만 듯 조그맣습니다.

나무 그늘에서’를 떠올립니다.

[나무는 매서운 생존의 세월을 견디어 내면서
이렇게 무성히 자라나
길가는 나그네에게 자비로운 그늘을 내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세월을 가면서
몇 평의 그늘로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세월을 키우는 것이려니
스스로 키운 만큼의 세월의 나무로 있으려니

나의 세월의 나무 그 그늘에서
쉬어가는 나그네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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