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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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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늘도 아침부터 사전 준비. 회의 또 회의. 거기에 두 번(오전 11시, 오후 4시)의 기자회견. 관방(官房)장관의 이름을 바꿔 번망(繁忙)장관이라 해야겠지요. 때로는 난폭(亂暴)장관. 저도 사람의 아들, 용서해 주세요." 일본의 사토.다나카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다케시타 전 총리의 회고다. ('정치란 무엇인가')

관방장관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성.청의 업무 조정역. 일주일에 두번 열리는 각의(閣議)와 사무차관 회의를 운영한다. 내각의 모든 현안, 정보의 교차로에 있는 수석 장관이다. 총리 대리 예정자 1순위에 올라 있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내각의 입. 정부 공식 발표는 그를 통해 나간다. 신문에 곧잘 등장하는 얼굴 없는 '정부 수뇌'는 관방장관이다. '정부 소식통'은 그 밑의 관방 부장관을 가리킨다. 관방장관은 '총리의 아내 역'으로도 불린다. 대개 같은 파벌에서 뽑는다.

총리와 관방장관의 관계는 늘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나카소네 내각의 고토다 장관은 '면도날'이란 별명을 얻었다. 총리에게 직언하고 때론 '노(No)'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오부치 내각의 노나카 장관은 '그림자 총리'로 통했다. 파워 때문이다. 반면 오부치는 '진공(眞空) 총리'. 관저에 두 명의 총리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9월의 일본 차기 총리 선거가 사실상 전.현직 관방장관의 2파전이 될 것 같다. 아베 신조 현 장관에 맞서 후쿠다 전 장관이 출사표를 던질 채비다. 후쿠다는 모리.고이즈미 내각에서 일한 역대 최장수(1289일) 관방장관. 모리의 설화(舌禍)가 잦아 '변명 장관' 소리를 감수해야 했다.

그가 움직이면서 아시아 외교가 선거 전초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는 신 후쿠다 독트린을 밝혔다. 후쿠다 독트린은 그의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1977년 밝힌 아시아 외교 3원칙. ①군사대국화하지 않는다 ②마음과 마음으로 교제하는 관계 ③대등한 협력자다. 그는 이를 넘어 아시아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베도 외교엔 일가견이 있다. 80년대 4기 연속 외상을 맡아 '외교의 아베'라 불린 아버지(아베 신타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 본류인 그는 요즘 아시아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선언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본지 대담). 일본이 아시아로 돌아올 때 마음과 마음의 교제는 시작될 수 있다.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흥하고, 한 사람으로 망한다'. 지난해 후쿠다가 낸 책 제목이다.

정치부문 오영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