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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거치면 아저씨도 꽃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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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3일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6층 남성복 매장. 한 젊은 여성이 건장한 남성 고객과 함께 정장을 고르고 있다. "손님처럼 넓은 어깨엔 가슴 쪽을 넉넉하게 하고 허리선이 잘록한 정장이 어울려요. 댁에 회색 셔츠가 있다고 하시니 그와 잘 어울리는 넥타이는 옆 매장에 있어요. 함께 가 보시죠." 손님을 매장 이리저리로 이끌면서 옷을 골라주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남성 고객 전용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인 김미정(32.사진)씨다. 퍼스널 쇼퍼는 생소한 직종이다. 적당한 우리말도 없다. 원래는 매장에 직접 들르기 힘든 이들, 가령 유명 연예인이나 대기업 오너를 대신해 구미에 맞는 물건을 사주는 사람을 뜻한다. 일부 백화점들에 이런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김씨는 VIP가 아닌 보통 손님, 그것도 남자 옷을 골라 준다는 점에서 업계 최초라 할 만하다.

백화점에서 옷을 직접 사겠다는 남성 손님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왕의 남자'가 대히트를 친 뒤 꽃미남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꾸미는 남성'또한 늘면서 이성 친구나 배우자를 동반하지 않고 혼자 백화점을 찾는 남성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의상 관련 공부를 했다. 찾아온 고객에게 우선 직업과 구매 성향, 선호 브랜드를 묻는다. 집안 옷장 속에 있는 셔츠와 넥타이 색깔을 파악해 놓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손님한테 맞을만한 브랜드 목록을 정한 뒤 함께 매장을 돌며 옷을 골라준다.

"처음엔 낯선 여자와 함께 돌아다니며 옷을 고르는 일을 겸연쩍어하는 손님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대개 금세 익숙해져요. 게다가 맘에 쏙 드는 물건을 고른 손님들은 또 찾아오기 일쑤지요."

특정 매장에 소속된 점원은 그 코너 물건만 열심히 팔아야 하지만 퍼스널 쇼퍼는 여러 코너 물건을 팔 수 있어 그만큼 객관적인 구매 판단을 해 줄 수 있다. 이 일은 두 달쯤 하면서 그가 느낀 점. "제발 한가지 브랜드만 고집하지 말라"는 당부다. 의상이 무척 다양해졌는데도 머리 속에 박힌 한두 가지 유명 브랜드에 집착하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발품 팔기 귀찮고 안목도 적어 점원의 화술에 휘둘려 나중에 후회할 옷을 사는 경우도 적잖다.

이 밖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여러 조언을 쏟아냈다. 백화점에 가기 전에 집안 옷장을 활짤 열어 무슨 옷이 있는지 한번 죽 봐야 한다, 그래야 불요불급한 옷을 사는 경우를 줄일 수 있다, 더 이상 살찌지 않겠다는 각오로 약간 작은 듯한 옷을 사는 것은 금물, 영원히 못 입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등등….

"옷은 주체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야 해요. 아저씨 소리 듣다가 꽃미남으로 변신할 수 있는 비결이지요."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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