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독일 외무장관 “북 이젠 행동 보여줄 차례, CVID 이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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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을 방한하는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사진=photothek.net]

25일 한국을 방한하는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사진=photothek.net]

“독일엔 이주민이 아주 많다. 그들은 친구, 친척, 이웃 혹은 직장 동료일 수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다.”
 ‘유럽의 뇌관’으로 떠오른 난민 수용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52)은 이처럼 밝혔다. 25일 아시아 순방차 방한을 앞두고 한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다.

하이코 마스 장관, 25일 방한 앞두고 본지 인터뷰 #"통일 도움 주고 싶어, 첫 순방지로 한국 선택 #이주민은 사회의 일부…독일 다양성으로 강해져 #월드컵 독일전, 끝까지 최선 다한 한국 승리 마땅"

 최근 난민 정책 합의 지연으로 대연정 붕괴 위기에서 가까스레 벗어난 앙겔라 메르켈의 독일 정부는 대외적으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비 분담 및 무역 관세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내우외환’이다.

 이런 가운데 마스 장관은 “유럽은 공동의 해결책을 도출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증명했다. 다양성과 통합을 무기로 난관을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통일 문제와 관련해 그는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조치(CVID)’를 이행해야 한다”며 “(분단 경험이 있는) 독일은 역사적 경험을 활용해 남북한을 도울 의향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방한 목적은.
“한국과 일본은 (독일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 파트너다. 경제적 의미도 있지만, 서로 공유하는 가치 측면에서 그렇다. 독일인들은 (한국처럼) 분단 국가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안다. 과거 분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임기 첫 아시아 순방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다. 특히 (한국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독일이 한국 정부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취지도 있다.”
지난 1월 독일 베를린 난민보호소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은 시리아 난민 모다나미. [트위터 캡처]

지난 1월 독일 베를린 난민보호소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은 시리아 난민 모다나미. [트위터 캡처]

최근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이 대연정 붕괴 위기에서 가까스레 벗어났다. 독일의 난민 정책에 변화가 생기는 건가.
“변화는 없을 것이다. 2015년 유럽 난민 사태는 예외적인 경우라 독일 정부가 나서서 신속히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난민 수용을 위해서라도 이젠 전(全) 유럽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국경이 열린 가운데 각 회원국이 독자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건 곤란하다.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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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세다. 타개책은.
“우리 목적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독일 국민들은 진지하며, 팩트에 기반한 정치가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안다. 또 그런 정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우리 힘의 원천이다. 우리는 모호한 공포심을 조장하지 않으며, 건설적인 정책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힘쓴다.”
25일 한국을 방한하는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사진=photothek.net]

25일 한국을 방한하는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사진=photothek.net]

한국에서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가 논란이다. 한국은 독일 만큼 다문화 사회가 아니다. 조언을 달라.
“각 국가는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조언은 삼가겠다. 다만 독일의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우린 친구, 친척, 이웃, 혹은 직장 동료일 수 있는 이들을 기꺼이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독일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강해졌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방위비 지출 및 (대유럽) 무역 관세 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장관께선 “EU는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며 EU 회원국 간 결속을 주문했다. 무슨 의미인가.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예측 가능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국제 질서 역시 필수다. 특히 독일과 한국처럼 국제 교류를 지향하는 국가들엔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자의 권리만 요구돼선 안되는데,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독단적인 노선을 걷는다면 막다른 길에 닿을 것이다. 독일은 지난 유럽 역사에서 이런 교훈을 고통스럽게 배웠다. 바로 ‘유럽연합’ 프로젝트라는 교훈 말이다. 회원국이 함께 할 때 유럽은 자의식을 갖고,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미국과 관계에 있어 ‘게임의 룰’이 신뢰할 수 없어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11월 유럽연합 외교장관들이 에스토니아 수도에 모여 대북 추가 제제안 마련에 합의했다. [나토 홈페이지]

지난해 11월 유럽연합 외교장관들이 에스토니아 수도에 모여 대북 추가 제제안 마련에 합의했다. [나토 홈페이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난민 수용 문제에 따른 솅겐 조약(국경개방조약) 무력화 등도 EU의 주요 현안이다. 대응 방안은.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유럽은 공동의 해결책을 도출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수없이 증명했다. 물론 28개 회원국이 매번 공동의 입장을 취하는 건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난 일부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 원칙을 폐지할 것을 최근 제안한 바 있다. (EU는)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 또 지난 몇 년 간 쌓인 의구심과 오해를 없애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난 올해 취임 직후 EU 회원국 외교장관들부터 만났다.”
독일은 통일 경험이 있다. 올해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한 건 무척 좋은 소식이다. 북·미 대화도 마찬가지다. 이제 북한은 행동을 보여줄 차례다. 국제사회의 감시 하에 CVID를 이행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지루하고 복잡할 것이다. 독일은 이 (대화) 과정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활용해서 말이다. 이미 우린 한국 정부기관과 독일의 통일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긴밀히 협력하고 하다.”
러시아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한국과 독일이 맞붙었다. 하지만 아쉽게 동반 탈락했다. 관전 소감은.
“나 역시 축구선수 출신으로 독일팀의 경기들을 시청했고,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독일과 맞붙은) 한국팀은 멋진 경기를 펼쳤으며, 마땅한 승리를 거뒀다. 디펜딩 챔피언(2014 브라질 월드컵)인 독일을 꺾었을뿐 아니라, 조 순위에서도 (독일에) 앞섰다. 정말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특히 한국 선수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방한 계획은.
“이는 메르켈 총리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내 방한 소감을 기꺼이 전달하겠다.”
기타 하고 싶은 말은.
“한국과 독일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앞으로 양국 국민들이 친분을 쌓을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특히 독일은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볼 거리도 많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비롯, 많은 성(城)과 궁전이 있다. 풍광도 아름답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수도로 꼽히는 베를린도 있다.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독일은 치안이 좋고,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나라다. 새로운 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1966년생인 마스 장관은 지난 2013년 법무·소비자보호장관으로 취임하며 메르켈 3기 대연정 내각에 입성했다. 4기인 올해 3월 외무장관으로 취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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