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마저 … " 허 찔린 한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오른쪽)이 1일 밤부터 국회 본회의장 입구를 봉쇄하자 2일 뒤늦게 나온 한나라당 의원들이 마주 앉아 대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극한 대치는 오후 2시 본회의가 시작된 지 28분 만에 끝났다. 한나라당이 공관에서부터 막은 김원기 국회의장 대신 열린우리당 소속 김덕규 부의장이 사회봉을 잡아 6개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저항은 예상보다 약했다.

◆ 민주노동.민주당이 여당 지원=본회의장 앞에서, 의장 공관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틀째 대치했다. 몸싸움과 욕설 시비도 벌어졌다. 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김덕규 부의장은 오후 1시쯤 주민소환법 등 3개 법안을 추가로 직권상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민노당이 부동산법 처리에 협조해 주는 대가로 상정을 요구한 법안이었다. 민노당(9석)의 합세로 여당(142석)은 재적 과반수(149석)를 2석 넘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계안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장에 가 있고, 와병 중인 의원과 각료들도 있어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오후 2시 본회의가 열리려 하자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진입 대신 맞은편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 박근혜 대표가 법안이 통과된 뒤 "민주당이 참여하지 않아 의결 정족수(149석)가 안 찰 줄 알았다"고 탄식한 것을 보면 열린우리당과 민노당만으로는 회의가 열리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그 시각 민주당 의원 11명 중 이낙연 원내대표 등 7명이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개회 7분 뒤 이를 확인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밀물처럼 들어왔지만 의장석 주변에 견고하게 방어막을 친 열린우리당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재오 원내대표가 "이게 국회냐,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며 울먹였고, 여성인 송영선 의원이 김 부의장을 향해 "이런 식으로 (하반기) 국회의장 해야 하나"라고 소리쳤다. "정신병자들" "사기꾼 같은 놈들" "뭐 이런 ××들이 다 있어" 등의 막말도 오갔다. 전여옥 의원 등 다수 의원은 회의장 뒤편에 서 있었다. 치마 차림으로 출근한 박 대표는 본회의장에 안 나타났다.

상정 법안의 제안 설명을 맡은 여당 의원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발언을 마쳤다. 강창일 의원은 단상에 나와 "법안 내용은 컴퓨터 단말기를 참조해 달라"고 했다.

◆ 여야 모두 "국민이 심판할 것"=각 당 모두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고 자평하고, 여론의 호응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법안 통과 직후 의총에서 "한나라당은 민생법안과 독도 수호 법안 처리에 반대한 정당"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한나라당을 규탄하면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여당을 "무도한 정당", 민노당을 "타락한 진보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법안 내용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상임위에서 가다듬고 정상 처리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듯한 모습이 지지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본회의에 참여했다"고 했다.

김정욱.남궁욱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