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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민연금은 정권의 연금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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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복지팀 기자

정종훈 복지팀 기자

“오래 다니던 친구들이 많이 나갔어요. 남은 후배들 보면 안타깝고 미안하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그만둔 운용직 A씨의 고백이다. 기자가 인터뷰한 전직 운용직 5명의 걱정은 ‘전주 이전’과 ‘인사 논란’이다. 지난해 2월 본부가 전주로 옮긴 뒤 운용직 이탈이 늘어났고 기금운용본부장(CIO)은 1년째 공석이다. 실장·팀장급도 곳곳에 빈자리다. 이를 채우려 해도 눈높이에 맞는 인재를 찾기 어렵다.

운용직의 위기는 곧 국민연금의 위기다. 정치권은 호시탐탐 국민연금을 노렸다. 압권이 2013년 6월 기금운용본부의 소재지를 전북으로 규정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김재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성주 민주당 의원(현 연금공단 이사장)이 적극 밀었다. 설마 그런 법이 국회를 통과할까 의심했지만 국회의원 209명이 찬성했다. 금융시장 가까이에서 호흡해야 할 기금본부를 멀리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옮겨올 수 없게 대못을 박았다. 그 후 서울 이전 이야기가 나올 때면 “기금운용본부는 전북의 독도”(김성주 의원), “좌시하지 않겠다”(김광수 의원)는 정치적 반발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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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 임명도 청와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정권마다 핵심 인사와 가까운 이가 일찍이 낙점되거나 연금공단 뜻과 상관없는 ‘오더’가 떨어진다. 최대 3년의 임기도 못 채우는 CIO가 태반이다. 강면욱 전 본부장은 1년 5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최고경영자(CEO) 앤 스토스볼은 2009년부터 7년간 운용을 책임졌다.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도 전임 CEO가 각 4년, 7년씩 자리를 지켰다. 스웨덴공적연금(AP)은 6개로 나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정부는 결과만 사후 보고받는다. 전·현직 운용직들은 미국과 캐나다 등을 무척 부러워한다. 그들은 “CIO는 자질과 인격만 갖추면 되지 정치색은 필요 없다” “공사화든 뭐든 독립성 보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까웠던 금액(보험료를 지칭)이 아깝지 않네요.” 최근 방영되는 국민연금 광고에 나오는 시민의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 시민들은 연금하면 ‘고갈’ ‘불신’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기금을 흔드는 건 정치권이지만, 피해는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수익률이 떨어지면 당장은 문제없다. 20, 30년 후에 연금을 지급할 돈이 없으면 후세대가 메워야 한다. 수익성·안정성 두 가지 기준만 필요할 뿐이다. 국민연금은 정권의 연금이 결코 아니다.

정종훈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