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합의 없지만 변화는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올림픽 후 처음으로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재개된 13일의 남북의회회담 제5차 예비접촉은「합의」는 없었지만 「변화」는 있었다. 변화의 폭은 비록 좁았다해도 양측이 일보 후퇴한 전진적인 변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의회회담 예비접촉의 논점은 회담의 형식과 의제다.
회담형식에서 과거 한국은 30∼40명 정도의 양측 의회대표가 참석하는 「대표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은 남북의원 전원이 참석하는「군중대회」를 고집했었다. 그러나 이번 접촉에선 한국이 개막식과 폐막식은 북한의 전원 참석을 수용했고, 북한은 북한 최고회의 대의원의 ,3분의1(2백18명), 한국 국회의원의 2분의1(1백50명)로 하자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회담의제에서 남한은 중단된 기본 회담의 재개, 인적· 물적 교류, 정상회담 개최 등의 문제를 제기했고, 북한은 불가침 공동선언 발표, 다방면적 교류협력을 제의했다. 이것도 실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여건만 변화되면 합의가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회담 형식과 의제에서 보인 양측의 변화가 아직은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차기 회담 일정에 합의를 보인 것은 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지금 북한이 직면한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올림픽성공은 그것을 방해하고 불참한 북한으로서는 중대한 충격이다. 게다가 우리는 올림픽을 전후하여 공산권 외교에서 많은 개가를 올렸다. 헝가리·유고와의 부분적인 공식관계 수립, 소련·중국과의 거리단축이 있었다. 한국정부는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남북간의 간접무역 조치를 선언해 놓았다.
이런 급격하고도 불리한 환경변화에 직면한 북한은 자신의 입장과 노선을 재정립해야할 시점에 놓여있다. 지금 평양집권층 내에서는 개방을 주장하는 진보파와 신중을 기하려는 보수파간의 정책토론이 다시 전개되고 있으리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충격과 딜레마에서 헤어나 새로이 정리된 방침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우리는 기다리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의 성급한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한반도 남과 북은 변하고 있다. 우리의 주변환경도 부단히 바뀌고 있다. 더구나 남북관계를 타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적극화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변화는 남북관계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변화에 기대를 걸면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진전시켜 나갈 준비를 갖춰야 한다.
다만 북한은 우리 주변과 내부의 구조적 변화를 거역해선 안 된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순응하면서 우리가 제시한 문제들에 대해 긍정적인 대응이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정부는 적십자회담과 경제회담의 재개, 학생의 남북한 국토순례와 친선경기, 실질적인 경제교류, 정상회담 등을 제의해 놓고있다. 이런 문제를 남북이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간다면 분단문제는 극복돼 나갈 수 있다. 11월 17일로 예정된 다음 번 예비접촉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려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