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규명 노력이 부족하다|이규진<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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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6년만에 재개된 국회의 국정 감사는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그 중에도 얼마 전까지의 세도가들이 줄줄이 증언대에 나서 야당의원들의 호통에 땀을 흘리며 답변을 하는 답변들은 우리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권력의 성쇠에 관한 한 단면이다.
그러나 5공 시절 문제를 일으켰거나 문제의 핵심을 쥐고 있는 인사들을 불러내 진실을 규명코자 하는 의원들의 노력은 추궁하는 쪽의 준비부족과 방어하는 목의 집요한 은폐기도로 속빈 강정의 꼴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론통폐합 문제를 다룬 10일의 문공위에서 있었다.
평민당의 박석무 의원은『언론 통-폐 합에 주도적 기능을 담당했던 세칭「대평회」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 배후세력을 밝히 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정한모 문공장관은『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고 했고 통폐합 당시 국보위에 파견돼 잠시 실무를 도왔던 허만일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은 40여분 동안『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박 의원의 질문은 당시 언론계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통폐합의 주역들 및 그 배후세력을 밝혀 내고 그들의 행위가 과연 정당했느냐에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통-폐 합의 아이디어를 누가 내고 추진했으며 그들에게 자문해 준 언론계 및 학계인사들은 누구였느냐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자면 박 의원은 상대가 쉽게 변명할 수 있고 초점이 어긋난 대평회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당시의 언론계 상황과 신 군부와 인연을 맺고 있던 학계·언론계의 인맥, 그리고 통폐합에 따른 이해득실관계 등을 조목조목 따지고 추적해 가는 준비와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같은 노력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80년 해직기자가 얼마며, 언론통폐합으로 직· 간접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조금만 찾아보면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그렇게 했었더라 면 정 장관이나 허 실장을 세워 놓고 40여분간 알맹이 없는 실랑이를 하고『들러리만 세워 놓고 백날 물어 봐야 무엇 하느냐』는 자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감사는 아직도 열흘 이상 남아 있다. 이제부터라도 좀더 착실한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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