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는 개성공단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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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공방은 레프코위츠 특사가 지난달 28일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에 대한 노동 착취 등을 주장하면서 벌어졌다. 이틀 뒤 통일부는 '단선적 사고' '왜곡'등으로 맹비난하며 "개성을 직접 방문해 보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발끈한 데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대표 상품인 개성공단을 흠집 내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남한 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것을 두고 노예노동(slave labor)으로 몰아붙이는 건 곤란하다는 얘기다.

둘째, 레프코위츠 특사의 발언이 미 행정부의 입장과 궤를 달리한다는 점이다. 물론 기고는 부시 대통령의 특사 직함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외교 당국자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 아닌 레프코위츠의 개인적 신념이라는 게 워싱턴의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 참에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레프코위츠는 네오콘으로 분류돼 왔다.

셋째, 부시 행정부의 전방위적 북한 돈줄 죄기 불똥이 개성공단까지 튀면 안 된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현재 공단에는 6850여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300만 달러를 임금으로 북한 당국에 지급했다. 현재의 시범단지 수준을 넘어 1단계 개발이 본격화하면 최대 7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 적어도 월 400만 달러가 북으로 넘어간다는 얘기다. 레프코위츠는 개성공단이 김정일 정권의 달러 박스가 될 것이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레프코위츠에게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주 금강산 방문 때 개성공단 사업자인 현정은 회장 등 현대 측 고위 인사에게 "레프코위츠는 인권을 개선하자는 특사인지 방해하자는 특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임금을 놓고 레프코위츠를 맞받아치는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달 50달러(약 4만6000원)의 임금 중 실제 북한 근로자에게 얼마나 건네지는지를 당국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 기업이 지급하는 달러를 한꺼번에 받아 근로자에게 북한 돈으로 나눠준다. 한 당국자는 1일 "레프코위츠의 주장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대목도 있지만 북한 인권을 소홀히 해온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대변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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