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패망 때 탈출 여성이 '벙커버스터' 폭탄 개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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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미국의 '벙커버스터'를 개발한 주인공이 1975년 월남 패망 때 미국으로 탈출한 베트남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 "안 두옹(46.사진) 미 국방부 과학자문관이 2001년 9.11테러 직후 100여 명의 국방부 팀을 이끌고 67일 만에 최신형 열기압 벙커버스터 11개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여성이 왜 폭탄 전문가가 됐느냐는 물음에 두옹은 "미군을 보호하는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이 망하고 목숨이 위태로울 때 나를 지켜준 미군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며 "그래서 난 새로운 조국 미국을 위해 일하고 싶었고, 이런 폭탄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월남이 공산 월맹에 넘어갔을 때 두옹은 15세 소녀였다. 그는 당시 가족과 함께 미군 헬기에서 보트로, 보트에서 다시 미 해군 함정으로 간신히 옮겨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새로운 인생을 열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다. 처음엔 영어가 달려 수학.물리.화학 수업에 열중했다. 메릴랜드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83년 폭발물 전문가로 미 해군의 지상전 연구소와 첫 인연을 맺었다. 86년 미사일 개발 작업에 관여했으며, 2001년엔 국방위협감소국에서 지하터널 파괴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벙커버스터에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자는 논의가 미 행정부 내에 있지 않으냐'는 WP 질문엔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네 자녀를 둔 두옹은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세상을 바꾼 여성 공학자들'에도 등장했다. 디스커버리 채널도 3일 '미래의 무기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두옹과 벙커버스터를 소개할 예정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벙커 등 지하에 숨겨진 적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된 초강력 폭탄이다. 1차 폭발하면서 지하로 뚫고 들어간 뒤 2차 폭발로 목표물을 부수도록 고안됐다. 가장 강한 것은 6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나 지하 30m를 뚫고 들어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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