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가 여전히 북핵 문제 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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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 시절 한반도 정책을 담당한 리처드 아미티지(61) 전 국무부 부장관은 "크리스토퍼 힐은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재량권(flexibilty)을 잃었다"며 "설사 있더라도 극히 제한적(very limited)"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8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 이유는 딕 체니 부통령과 국방부가 대북 압박 정책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며 "부시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힐이 강경파에게 밀린 게 사실인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난 재임 당시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풀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때마다 체니 부통령실과 국방부가 제동을 걸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힐이 임무를 이어받은 직후 잠깐 잘해 왔지만 지금은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와 같은 처지가 됐다. 힐은 (강경파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체니 부통령이 왜 국무부 사안인 북핵에 참견하나.

"그는 원래 북한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체니를 신임하며 밀어주고 있다."

-6자회담 전망은.

"단기적으로 비관적이다. 미국은 압박을 계속하고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는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북한은 미국이 이란 핵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임을 알고, 지금은 협상으로 핵 포기 대가를 받아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6자회담이 깨지고 미국이 강공으로 나올 가능성은.

"부시 행정부는 외교로 푼다는 방침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군사행동이 어리석은 옵션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핵은 이란 핵과 달리 중국 등 주변국 모두가 책임지고 풀 이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북 압박이 북한의 회담 복귀로 이어지느냐다."

-한.일 간 독도 문제 전망은.

"한.중.일 3국의 민족주의가 부딪치며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게임의 일환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중국과의 영토분쟁까지 겨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는 점점 더 폭발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0년 중국 인구는 세계의 19%를 점할 전망이다. 게다가 중국은 20세기 내내 일본이 독점해 온 동북아 주도권을 이미 공유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남북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경제.군사강국으로 커갈 것이다. 세 나라의 민족주의는 분열적 성격이 강해 충돌 요인이 크다. 3국은 미국이 참여한 대화체제를 구축해 동북아 안정에 힘써야 한다."

-국무부 부장관 재임 시 한국 관련 일화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전날 마지막 만난 사람이 나였다. 나는 1980년 김대중씨가 사형선고를 받자 리처드 앨런 백악관 보좌관, 마이클 아머코스트 국무부 차관보와 함께 신군부를 설득해 김대중씨를 무기징역으로 감형케 해 미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왔다. 또 83년 KAL기 피격과 아웅산 폭파 사건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후임자로 거론되던데.

"부시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혹 모르지.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법이니까."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리처드 아미티지는

미 공화당의 대표적인 한국.일본통. 1983~89년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를 지낸 이래 공화당 정권의 한반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2000년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면 주일미군 감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콜린 파월과 함께 부시 1기 국무부를 책임지면서 북한 핵 문제를 협상으로 풀려는 온건 보수주의를 견지했다. 그러나 북한의 범죄행위엔 강경 입장이다. 현재 '아미티지 인터내셔널'이란 민간회사를 운영하면서 일본의 미래를 전망하는 새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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