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했던 농촌에 '한우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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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산외면. 1440가구 2962명이 살고, 변변한 특산물이나 관광지 하나 없는 시골이다. 1년여 전 만해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부분의 농촌처럼 썰렁했다.

이랬던 산외면에 요즘 사람이 몰려든다. 면사무소 앞 길에 평일은 2000명가량, 주말.휴일은 3000명 안팎의 외지인이 모여들고 있다. 자동차로 20~30분 거리인 정읍 시내와 전주에선 물론 수도권과 영남.충청 지역에서도 찾아 오고 있다.

산지 직거래의 장점을 살려 가격을 파괴한 한우 고기 판매로 산외면이 뜨고 있다. 면사무소 앞 길 400m의 양편에 있는 한우 고기 취급 식육점과 음식점은 모두 26곳이고, 10여 곳은 개업을 준비 중이다. 이들 업소는 쇠고기를 도시의 절반 수준에 팔고 있다. 한 근(600g)에 안심.제비추리.등심.치마살 등은 1만4000원, 불고기.국.장조림 거리 등은 1만원이다. 또 대부분의 업소가 고기를 사거나 다른 곳에서 사 오는 사람들에게 근당 5000원만 받고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가스레인지와 상추.양념 상을 차려 주고 있다.

따라서 고기값 1만4000원과 상차림 값 5000원을 합쳐 1만9000원이면, 도시 음식점(보통 1인분 200g)에선 3인분에 해당하는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

정육점 주인 신대식(46)씨는 "손님들은 고기를 사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근씩 사 가고 있으며, 업소마다 택배를 통해 파는 물량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외면 한우 거리에서 팔리는 양은 하루평균 어미 소(600㎏ 기준) 20여 마리분에 이르고 있다. 산외면에는 원래는 정육점이 두 곳뿐이었으나 이들이 고기를 싸게 파는 데다, 2년여 전 고기를 사 가지고 가면 구워 먹게 해 주는 식당이 생기면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 지역경제 활기=외지인이 많이 찾아오면서 다른 업종까지 재미를 보고 있다. 산외면의 360여 축산 농가는 물론 상추.고추 등 채소류를 재배하는 농가도 소비가 늘면서 신이 났다. 주유소를 경영하는 김현목(50)씨는 "기름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좋아했다. 땅값도 껑충 뛰었다. 도로변 상가 자리는 2년여 전에 평당 20만~30만원 하던 게 지금은 120만~1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 수소 고기 박리다매=산외면 상인들은 거세하지 않은 수소의 고기를 팔고 있다. 비(非)거세 한우는 생후 24개월이면 다 커 거세한 것보다 생육기간이 5개월 정도 짧다. 그만큼 사료 값 등 생산비용이 덜 든다.

김호기(59) 산외한우 번영회장은 "비거세 한우 중에서도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 가두고 길러 고기가 질기지 않은 소만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지에서 직접 소를 구입해 도축함으로써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애는 한편 박리다매 전략을 펴 가격을 낮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읍=이해석.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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