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부금리 논쟁 한국으로 불똥 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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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고금리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

"금리 낮췄다가 대부업체가 망하면 급전 필요한 서민들만 골탕먹는다"

일본 금융 당국과 대부업체 간 '이자' 싸움이 뜨겁다. 일본 금융청이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금리를 연 29.2%에서 20%로 낮추겠다고 하자, 대부업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 금융청은 20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최고 금리 인하 등이 담긴 대부업체 규제 강화안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자제한법'과 '출자법'을 통해 고금리를 규제한다. 이자제한법은 연 15~20%, 출자법상에선 연 29.2%가 최고다. 이자제한법을 어기는 것만으론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대부업체들은 형사처벌 대상인 출자법보다 낮고 이자제한법보다 높은 '그레이존 금리(20~29.2%)'로 대출을 해줬다.

금융청이 '그레이존 금리'을 없애고 최고 금리를 20%로 낮추겠다고 칼을 빼든 것이다. 지난달엔 불법으로 빚을 받아낸 일본 내 4위 대부업체 아이후루를 영업정지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월 이자제한법상 상한인 20%를 넘는 금리에 대해서는 상환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부업체에 대한 전방위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 대부업계는 당장 앓는 소리를 낸다. 법이 통과되면 다케후지(武富士).아콤.프로미스.아이후루 등 4대 업체의 순익은 연 2700억엔 이상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이미 이들 업체의 주가도 연초보다 14~37% 떨어졌다. 지난해 3월 말 1만8000여개인 대부업체 중 상당수가 파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대부업계 이용자는 약 2000만명. 와세다(早稻田)대학 소비자금융서비스연구소에 따르면, 최고 금리가 23% 수준으로만 떨어져도 현재 이용자의 46%(900만명)가 대출을 못 받게 된다. 대부업체들은 "우리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은 대부분 은행 등이 외면한 사람들"이라며 "최고 금리 인하는 영세민의 급전 조달을 막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최고 금리 인하 불똥은 한국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일본 내에서 수익성이 나빠진 다케후지.아콤 등 대형 업체의 국내 상륙도 충분히 예상된다. 이미 아이후루는 2월에 한국 진출을 선언했었다. 아직은 중소업체만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의 국내 대부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현재 41%. 여기에 대형 업체까지 가세하면 시장판도는 불보듯 뻔하다.

한국의 최고 금리는 연 66%. 민주노동당은 이를 25%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내 대부업체는 조달금리.연체율.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66%도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며 맞서고 있다. 일본 금리 전쟁의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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