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정치권으로 번진 '죽을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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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5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고 있는 테리 시아보(41.여)의 생명을 연장하는 문제가 22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탬파 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뜨거운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사건은 마무리단계로 접어들었다.

시아보는 1990년 2월 심장발작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됐다. 남편 마이클은 아내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6년 전부터 법원에 생명보조장치(영양공급 튜브) 제거를 청원해 왔다. 마침내 지난 18일 플로리다주 항소법원의 명령에 따라 튜브가 제거됐다. 의사들은 앞으로 그가 1~2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들고 일어났다. 부시는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왔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다. 미 의회는 20~21일 그의 안락사 결정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만들었고, 부시는 이 법에 서명하기 위해 쉬고 있던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급히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딸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시아보의 부모는 판사의 결정을 또다시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만에 법원은 튜브 제거 명령을 또 내렸다. 앞선 10번의 재판에서도 모두 같은 결론이었다.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생명보조장치 제거를 찬성하는 사람이 63%로 반대(28%)의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시아보를 위한 특별법은 말 그대로 특별했다. 미 의회가 특정인의 가정사에 간여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고, 한 개인을 위해 만든 유일한 법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7일 "법원은 생명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해 사법권 침해 논란까지 빚었다. 그러나 그런 부시와 지금도 계속 인명을 앗아가고 있는 이라크 전쟁의 최고책임자 부시는 다른 사람이냐고 꼬집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쨌든 시아보 케이스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시 한번 보수적 유권자들에게 심어줬다. 21일 탬파 법원을 나서는 시아보의 아버지를 변호사가 아니라 두 명의 성직자가 '호위'하는 장면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함축해 보여줬다.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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