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력이「평화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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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년 전 소련의「미하일·고르바초프」서기장은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발표, 소련이 아시아-태평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소련은 그 후 중국에 대해서도 화해의 손길을 뻗쳐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은 그 후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선 소련 극동정책의 내부변화, 그리고 국제정치 정세에 미칠 영향, 이렇게 둘로 나눠 논할 필요가 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은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를 개방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소련의 대미핵 전략 해군기지로 존속하는 한 소련이 아무리 아시아-태평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명해도 이에 대한 일본 및 기타 아시아 국가들이 갖는 의구심은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블라디보스토크의 대외개방은 어느 정도나 진행되고있을까. 유감스럽게도「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현재 소련내 거의 전지역에서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개발옥섹는 군부로부터의 저항으로 인해 그 모멘트를 잃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군부가 반대하는 이유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군항에서 일반항구로 바꿀 경우 소련은 동해에 면한 극동지역에선 이와 맞먹는 군항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련의 시베리아·극동지역에서「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완전히 무력화했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브레즈네프」시대엔 제2시베리아철도건설 등 중앙정부로부터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시베리아개발이 소련정부의 방침이었다. 그러나「고르바초프」가 집권한 후부터는 이 같은 비효율적 방법에 의한 시베리아개발정책은 포기됐다.
대신 각지방단위·각 기업단위로 자활의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소련은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개발을 위해 한국에대해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필자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일본보다도 한국에 대해서 큰 의미를 가지고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업면에 있어서 현재 시베리아는 초급단계에 머물러 있다.
소련인들이 도입하고자 하는 공업분야에는 고도의 정밀기계는 부적당하다. 따라서 한국산 기계 쪽이 경쟁조건을 만족시킬 것이다.
최근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하고 돌아온 일본인 친구로부터 직접 들은 얘긴 즉 하바로프스크공항 패스포트 심사 대에서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한국인 실업가들을 여러 명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과 소련과의 경제교류진전은 예상외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련에서 대외합작기업 법이 제정된 이래 한국기업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사할린에는 한국인이 약4만명 살고 있다. 사할린에 다녀온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잘 알고 있으며 현재 소련에서 진행중인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에 따라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하면 자신들의 생활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고있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이후 한국과 소련의 경제교류관계는 더욱 강화되리라 예상된다. 이는 한국의안정을 위한 조건으로서 또 하나의 좋은 요인이 되리라.
소련 극동지력에서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 지역의 비군사화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지역의 대외개방은 방해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대외 경제교류 확대에 탄력이 붙음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은 새로운 평화구축의 카드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최근 국제정치 환경에 있어서 소련의 움직임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선언 이외에도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12일에는 소련·중국·북한간 무역수지의 다각적 결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북한에 대한 곡물(잡곡)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시베리아에는 벌목을 위해 북한에서 인부들이 대규모로 나가있다. 소련·북한간 결제는 현지에서 벌채한 목재로 이뤄지고 있다.
북한·중국간의 무역결제는 현재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있다. 그래서 중국은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에 소련에서 들어오는 목재를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소련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러져 있다.
이 같은 관계구축에 따라 최근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해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중국이 추진중인 인민해방군 1백만명 감축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이 양국 간의 좋은 관계가 계속됨으로써 극동의 국체정세는 안정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 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중소 양국의 대림과 배한 김일성정권의 노선간에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중소 양국이 이제 대북한관계에 있어 대립 아닌 공동보조의 관계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주체사상과 자주독립노선을 표방했던 것은 중소대립의 격화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내부에서 중국파와 소련파가 대립, 이 과정에서 권력의 과점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중국파·소련파의 레테르가 붙은 자들은 권좌에서 추방됐다. 현재 북한 정권이 취하고 있는 극도로 왜곡된 대외폐쇄정책은 중국·소련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이 같은 경색된 정책노선을 북한이 채택하게 된 테는 중소간 불화가 원인이 됐다는 점을 중소양국은 깨달을 것 같다.
그동안 양국이 대립한 상태에서 북한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외해 중소는 북한내의 자국에 우호적인 주요인사를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외교를 진행했으며 그들의 포섭대상이 된 인사들은 북한내부에서 주체사상의 이름으로 추방됐다.
오늘날 북한 지도층내의 인재감소 현상은 이 같은 사태전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같은 인과관계를 인식한 중국과 소련이 최근 공동으로 대북한관계의 기본 틀을 만들고 북한측의 변화를 기대하는 자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중·북한간에 다각적 결제관계수립의 배후엔 이 같은 사정이 있다고 소련의 믿을 만한 소식통은 말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필자 자신 중국의 지인들로부터 들은 바가 있다. 중국의「자오쯔양」(조자양)당총서기는 아직도 평양을 방문치 않고 있는데 그 이유를 중국인 친구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그가 평양에 간다 해도 무엇하나 합의할 사항이 없는 이상 그가 평가에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미 서울올림픽 참가, 한국과의 경제교류의 급속한 확대 등 북한이 동의할 수 없는 노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청도∼부산간 컨테이너선 직항노선이 개설된 지금 중국·한국양국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소련도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각화하면서 공동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노선전환을 권유하고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만큼까지 와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평화를 구조적으로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그리고 중소 화해는 한반도 평화유지에 플러스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은 이를 명백히 입증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올림픽이후 한국은 중소와 경제교류를 확대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유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페레스트로이카, 중소화해, 서울올림픽개최, 이 세가지를 한반도 평화를 밀고 나가는「세가지 호조건」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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