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실화」를 연극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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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사건실화」를 소재로 한 두 편의 연극이 최근 잇달아 공연돼 주목을 끌고 있다.
극단 신협이 제3공화국 최대의 성 스캔들이었던 정인숙 사건을 극화한 8장7절을 거부한 화려한 여인』을 제1백24회 정기공연으로 지난8월 한달 간 서울 홍익소극장 무대에 올린 데 이어 극단 제작극회가 제40회 대공연으로 한강교량폭파사건 공판을 다룬『증인』을 오는 12∼18일 오후4시·7시 문예회관 대 극장에서 공연키로 한 것.
특히『증인』은 63년 재판이 종결되자 실험극장이 64년 기획에 들어가 극작가 신명순씨에게 집필을 의뢰, 66년5월 당시 예륜(현 공연윤리위원회 전신)의 공연심의까지 통과했으나 공연 하루 전 외부 압력에 견디지 못해 공연을 중지했던 한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한강폭파 주범 최창식 대령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무죄로 확정되기까지보다 10년이나 더 긴, 23년 만에 비로소 무대에 오르게된 이 작품은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생존해 있는 관계자들의「미묘한 입장」을 반영, 극중에서는 지명과 인명을 모두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6·25당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의 현장책임자였던 남병식 대령이 사형 당한지 13년이 지난 후 변호사 윤일경(서학 분)은 남 대령 미망인(우명옥 분)으로부터 재심공판의 변호를 의뢰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있는 윤 변호사는 처음엔 미망인의 요청을 거절하지만『진상만은 밝히고 싶다』는 말에 이끌려 변론을 맡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윤 변호사는 여러 곳에서 압력을 받고, 미망인 또한 재판 포기를 생각하는 등 고비를 넘기다가 마침내 유력한 증인 정신부(임종국 분)의 결정적 증언으로 남 대령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연출가 정진씨는『역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조직 속에서 개인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며, 정당화될 수 있는 조직의 명분이 개인에게는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데에 연출의 초점을 맞추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지난8월 약3천 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 면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 심회만 작·연출의『8강7절…』은 1일부터 한달 간 서울 홍익소극장에서 앙코르공연을 가질 예정.
권력층의 비리보다 정인숙 이라는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화려하고 오만했던 여인이 절대권 자를 만나 어떻게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지를 그러낸 작품이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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