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구속을 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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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당장 우려되는 것은 현대차의 경영 공백이다. 정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현대차를 재계 2위로 끌어올렸다. 급성장의 발판이 된 '미국 시장 10년-10만 마일 보증' 같은 사안도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런 선장을 잃은 현대차는 동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회사 내부에는 불안과 탄식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흔들려선 안 된다. 현대차는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수만 명의 주주와 종업원, 협력업체를 거느린 주식회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이제 현대차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기업이 투명경영을 정착시켜야 할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더 이상 비자금, 경영권 편법 승계 등이 통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1인 경영 체제에 의존하다간 총수의 위기가 곧바로 기업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도 보았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에 카리스마가 일정 부분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기아차처럼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을 노릴 정도의 거대 기업이 오너 1인 체제로 굴러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 경영의 도입만이 해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조차 도모하기 어려운 시대다.

나라 안팎의 경제환경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국내 기업들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경영 모델을 찾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지만 그 진통이 부담스러운 느낌이다. 기업들의 자기혁신을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우리가 아니라면 글로벌 경쟁에 내몰린 국내 기업을 누가 감싸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