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리즘의 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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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만난을 무릅쓰고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의 올림픽정신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의 순화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대회에서 일어난 몇건의 선수 약물복용 사건은 올림픽의 상업주의화와 맹목적 민족감정, 쇼비니슴을 드러내 보이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근대 올림픽이 복활된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참가선수들의 아마추어 적부심사에 있었다.
1924년 당시 IOC위원장이었던 「바이·에라투어」가 규정한 아마추어는 『스포츠를 통해 조금의 이익도 얻지 않으며 자신의 명예를 걸고 기꺼이 이러한 사실을 선언할수 있는 사람』이었다.
1920년대 세계 장거리 경주의 영웅 「누르미」가 미국여행 때 교통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한 이래 3O년대 미국의 육상영웅 「제시·오언스」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자격을 빼앗겼다.
7O년대초까지 IOC의 기능은 선수들의 자격박달이 전부인양 프로와 아마의 엄격한 구별로 아마추어 정신을 유지하려했다.
74년 「킬러닌」위원장의 선출과 함께 아마추어 규정은 대폭 완화되었다.
선수들의 훈련 및 시합에 따른 재정적 손실의 보상과 선수 후원회에 대한 합법성이 인정되었다.
84년 LA올림픽에서 테니스가 공식종목으로 인정받으면서 직업적인 프로테니스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됨에 따라 사실상의 아마추어리즘은 올림픽에서 사라져 버렸다.
세계 최강의 프로축구팀이 브라질선수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고, 세계정상의 테니스 선수 「그라프」가 서독을 대표해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아마와 프로의 엄격한 구별이라는 현대올림픽의 한 기둥은 사실상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되었다.
1960년 로마대회때부터 시작된 『아디다스와 퓨마의 신발전쟁』이래 올림픽의 상업주의는 극도로 물들여져서 TV중계권을 둘러싼 공식적 올림픽 상업주의는 엄연히 공인되고 있다.
공산국가들의 「국가 아마추어」도 자본주의 국가의 직업선수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메달 획득과 아파트의 평싯가 연결되어 있는, 국가가 보장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원래의 아마추어와는 거리가 멀다.
올림픽의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상업주의화의 추세에 대해 수많은 올림픽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현하고 있고 그에 대한 개혁안을 내놓고 있지만 올림픽의 오염도는 세월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다.
로마올림픽에서 최초의 약물복용사건이 있은 후 지금까지 기록갱신을 위한 금지약물의 복용사례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 가고 있다.
60년대까지 올림픽위원회의 골칫거리였던 아마추어리즘의 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올림픽이 당면하고있는 최대의 난제는 도핑의 방지에 있다.
아마와 프로의 삭출에서 약물 복용자의 색출이 경기자와 운영자간의 끝없는 투쟁으로 번져난 것이다.
2명의 불가리아 역도선수와 세계신기록을 세운 「벤토츠망의 자격이 박탈당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올림픽이 남겨 놓은 최소한의 아마추어 정신을 지키자는데 그 뜻이 있다.
퇴색된 아마추어리즘에 약물 오염마저 깊이 들게 된다면 현대올림픽의 정신은 새롭게 조립되어야만 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안고있는 상업주의와 맹목적 민족주의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환호와 사랑을 받고있는 또 하나의 정신, 세계인의 광장으로서의 올림픽 화합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올림픽은 아직도 영원한 존재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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