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싱글스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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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4일 오전 11시 서울올림픽 빅이벤트의 하나로 기록될 조정1인승(싱글스컬) 경기가 펼쳐진 미사리 한강 조정경기장.
스탠드를 꽉 메운 1만 여명의 각국 관중들은 세계적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따라 물결과 바람은 한 점 없이 잔잔했다.
조정황제의 타이틀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백전노장의 「페터·콜베」(35)일까, 신예돌풍의 주역 「토머스·랑게」(24)일까.
이날 서독 「콜베」와 동독 「랑게」의 대결은 올림픽 최초로 동·서독이 서로 명예를 걸고 벌이는 한판이어서 더욱 박진감 넘쳤다.
당초 남자 싱글스컬은 올림픽 4연패를 노리는 핀란드의 「페르티·카르피넨」과 이를 저지하려는 「콜베」의 대결로 모아졌었다.
그러나 2파전을 벌일 것이라던 예상은 신예 「랑게」의 등장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랑게」는 지난해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와 지난 7월 스위스 루체른 대회에서 두 노장을 따돌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것.
「카르피넨」에게 설욕을 벼르며 그를 견제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한 「콜베」는 코펜하겐대회에서 그만 「랑게」라는 복병을 만나 5백m 지점에서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또 루체른 대회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랑게」에 2분30초의 차로 2위에 머물렀다.
『「랑게」는 나이도 젊고 체력과 기술이 뛰어난 선수다. 내가 그보다 앞서는 것은 오직 선수생활이 오래된 것뿐이다.』
「콜베」는 「랑게」의 우승을 이렇게 예고하고 있었다.
「카르피넨」·「콜베」·「랑게」의 3파전으로 압축된 싱글스컬 한판은 「카르피넨」이 준결승에서 허무하게 탈락함으로써 새로운 충격파를 던졌다.
2파전으로 좁혀진 결전의 운명은 초읽기로 다가와 조정경기장을 긴장 속으로 몰고 갔다.
동독국기 모양의 타이츠 차림의 「랑게」는 관중에게 미소를 흘리며 코치와 함께 스타트라인에 나타났다. 한동안 그는「로다·트라빌」 코치와 귀엣말로 작전을 주고받는 듯 했다.
뒤이어 관록의 「콜베」가 손을 흔드는 여유 속에 경기장으로 들어가 스타트 라인에 뱃머리를 맞췄다.
4번째인 「랑게」, 3번레인 「콜베」.
그동안의 등위와 기록으로 시드배정을 받은 3, 4 레인도 황금레인. 맞수는 나란히 피니시를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페스프 파르테(준비)!』구령과 함께 선심은 빨간기를 내려 출발신호를 보냈다. 23명 중 결선에 오른 6명의 선수들이 힘차게 패들을 저었다.
5백m, 1천m 강약강약을 거듭하던 피치가 가쁜 숨만큼이나 빨리 돌아갔다.
거친 패들은 물살을 가르며 하얀 포말을 뿜어댔다.
응원도 치열해졌다. 일단의 서독인 들은 「콜베」가 피치를 더할 때마다 『콜베』 『콜베』를 외쳐댔다.
피니시의 문턱에 접어든 1천5백m 지점. 간격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골인 30여m를 앞두고 「랑게」는 「콜베」와의 거리를 점차 넓혀갔다. 5m, 10m, 20m….결코 좁힐 수 없는 마의 거리.
운명의 6분49초86. 비로소 오랜 대장정도 싱글스컬의 세대 교체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노메달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콜베」는 조정인생 22년을 마감해야 했다.
힘과 기술· 투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랑게」는 지난해 코펜하겐 세계선수권 대회와 지난 7월 스위스 루체른 대회에서 2분30초라는 백지 한장의 우세로 「콜베」와 「카르피넨」을 따돌리고 우승, 싱글스컬의 「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다.
어쨌든 이번 서울대회에서 예선과 패자부활전·준결승을 거쳐 결선에 오르는 동안에도 줄곧 「랑게」는 기록 면에서 「콜베」를 앞서고 있었다.
「콜베」는 오히려 예선에서 탈락, 패자부활전에서 기사회생하는 예상 밖의 부진을 보여 「한물간」 선수라는 사시를 받았다.
예선 1조에서 이미 첫 맞수 대결을 벌였던 「랑게」- 「콜베」의 일전은 싱겁게도 「랑게」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1위 「랑게」의 기록은 3위 「콜벤」보다 무려 9초10이 빠른 7분3초25.
거리로 따지면 7m, 두 정신반의 엄청난 간격이었다.
이렇듯 이번 빅이벤트의 첫 기선제압은 대회필두부터 「랑게」 우승을 점치는 쪽으로 흘렀던 것이 사실이다.
예선 3위로 패자부활전을 거쳐 준결승에 진출한 「콜베」는 22일 경기에서 맞수 「카르피넨」과 대결, 7분1초76으로 1위를 차지함으로써 「카르피넨」은 아예 입상권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같은 날 준결승을 치른 「랑게」는 6분58초65로 우승, 6분대를 기록함으로써 무서운 신예의 저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것.
기록상으로도 이미 「랑게」의 우승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다가왔다.
lm90㎝, 90㎏의 조정선수로서는 그리 크지 않는 물의 평정자 「랑게」는 지금까지 두노장의 유명세에 밀려 조정의 외곽지대를 맴돌았던 타인.
그러나 이날 한판은 조정싱글스컬의 두 노장 시대의 막을 내리고 신자 「랑게」 신시대를 연명레이스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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