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느 나라인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얼마전엔 미국인 고등학생 두명이 아무 이유 없이 임신부를 때려 문제를 일으키더니 이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도둑질까지 하고….』
『입장식 때를 생각해보세요. 제멋대로 대열을 이탈해 카메라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장판을 만들어 다른 나라 선수단에 피해를 주고도 선수단대표란 사람이 자유분방한게 미국식이라니….』
미국인 수영선수 두 명과 코치가 호텔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사자머리모양의 싯가 62만원짜리 석상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힌 사실이 보도된 24일, 신문사에는 울분을 터뜨리는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범인들이 올림픽수영 4백m와 8백m 금메달리스트이며 대표팀수영코치까지 함께 있었다는 보도에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또 미국 AP통신과 ABC방송이 『수영 2관왕인 미국선수 두명이 호텔에서 콘크리트 블록 한개를 옮긴 장난 같은 일 때문에 한국경찰에 구금됐다』고 보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노의 소리는 더 높아졌다.
『그 사람들 제정신입니까. 우리 나라 메달리스트는 적어도 도둑질은 안합니다. 국민수준의 차이입니다.』
이에 앞선 24일 오전 9시30분 서울용산 경찰서 외사계.
도둑질을 하다 잡혀온 「트로이·델비」 선수(19) 등 미국인 3명은 느긋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죄책감이란 전혀 없는 듯한 표정. 미대사관 직원 등 10여명이 몰려와 이들을 둘러싸고 한국기자들의 취재를 거칠게 막았다.
『Get out of here (여기서 나가라).』
『대체 여기가 어느나란데 당신들 마음대로 나가라 말라요.』
분통이 터진 한국기자들의 항변에 이들은 들은체만체.
담당형사에게 『신문에 보도되면 절대로 안된다』는 엄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부수영선수와 미국전체는 구분해야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종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