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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못미친 "한-헝가리 합작 무대"|총체극 『노스토이-불의 아해들』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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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5일 4일간의 공연을 끝낸 『노스토이-불의 아해들』을 통해 국내 공연예술계는 미완의 새로운 경험 하나를 보탰다.
올림픽문화예술축전 중 몇 안되는 창작공연예술로서 재미작가 홍가리씨의 원작을 헝가리의 세계적 감독 「미클로스·얀초」가 연출한 공산권과 최초의 합작예술이란 점에서, 또 창경궁 명정전이란 고궁의 열린 무대에서 공연됐다는 점에서 『노스토이』는 많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신들의 장난감으로서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인간들을 위해 지식의 신 「도샤」와 사랑의 여신 「아샤」는 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불을 가져다주고 천형을 받는다. 반신반인 「파우스트」가 이 두 신을 구출, 갈등과 반목만이 팽배한 인간세계에 정의와 사랑을 가져다줘 구원하려는 것이 원작 『노스토이』의 기둥줄거리고 이를 무대에서 무용·음악·연극 등으로 변주한 것이 총체적 실험극 『노스토이』였다.
『노스토이』는 이들 서양올림푸스산 제신들의 원형을 그대로 한국의 금강산으로 데려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재현해 낸 것에 불과했다.
인류의 구원자 「파우스트」탄생에 여자무당을 개입시켰다해서 독일의 「파우스트 설화」가 한국의 설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신의 원형을 현대의 틀에 변형 수용, 보존하려 했다』는 홍씨의 말과는 다르게 원작자체가 한국정신의 원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총체극으로서의 『노스토이』는 크게 솔로·듀엣·군무 등의 춤과 이를 위한 사물놀이, 국악관현악단의 연주, 출연진들의 노래, 그리고 진행자·광대·주연들의 대사로 이루어졌다.
주연들의 대사나 코러스를 통해 이 작품의 테마인 『인류역사에 대한 알레고리』 『영원회귀』등을 외치고는 있으나 춤·음악·연기 등 다른 부문이 뒷받침되지 못해 앙상한 관념으로만 맴돌았다.
또 「도샤」(국수호분)와 「아샤」(박숙자분)의 아득한 신들 세계의 사랑을 춤춘 아름다운 2인무는 낯설고 힘찬 군무에 의해 금방 깨뜨려졌다.
음악부문의 사물놀이는 출연진들의 동작을 위한 신호로, 합창은 우리의 동요와 유행가로만 구성돼있어 극의 진행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때문에 『노스토이』는 총체극으로서의 밀도를 잃고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춤·음악·연극의 각 장르는 그것들대로 따로따로 놀았다.
『시원한 가을밤과 명정전 무대자체가 인상깊다. 밤하늘을 향해 일제히 벌린 손등은 힘있는 군무가 어떤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하면서도 술취한 동작, 어리석은 광대 춤 등 마치 난센스 코미디 같기도 하다』는 한 외국인 관객 평대로 이 작품은 외국인들에게 한국고궁의 건축미와 가을밤하늘을 만끽케 한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인류갈등과 대립극복을 위한 집단적 제의」, 「테크놀러지 사회에서의 새로운 신화창조」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던 홍씨의 『한국과 헝가리 수교의 제의를 조선백성을 다스리던 명정전에서 올린 것도 뜻깊은 일』이라는 공연 후 작품외적인 평은 이 공연이 기대에 못 미쳤음을 시인하는 듯 했다.
앞으로 TV 영화로는 어떻게 영상화될는지 모르겠지만 총체극으로서의 『노스토이』는 가을밤 고궁에서 펼친 「국적불명의 헤프닝」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이는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한다는 명분 아래 한국에 대해 깊은 인식을 못 가진 외국인에게 작품을 맡긴 사대적 발상이 빚은 또 하나의 우라고 할 수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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