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리랑…」을 보고 소 통역 서동우 씨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자, 준비됐어요. 갑니다. 음악 Q!』등장인물의 손짓과 함께 「88아리랑 대축제」라 쓰인 네온사인에 불이 번쩍이고 화려한 무용이 펼쳐질 때만 해도 나는 이 뮤지컬 공연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몰랐다.
무대 뒤켠으로 안경 쓴 노인네 한분이 목에 네모 판을 걸고 손을 휘젓다 사라질 때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아리랑을 주제로 한 아리랑 가요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사이 타시겐트 한인방송국에서 취재차 나왔다는 이 한(주인공)이 등장하면서 나는 조금씩 색다른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올림픽 취재는 아니지만, 나 역시 올림픽 때문에 소련 선수단 조선어 통역으로 꿈에도 잊지 못하던 모국 한국에 올 수 있지 않았는가.
4살 때 부모와 헤어진 후, 할아버지와 함께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던 이 한, 한국에 잠시 들르기 위해 마마를 앓던 자식을 두고 나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해 한을 품고 돌아가신 한의 어머니, 두고 온 가족을 다시 데리고 오려고 불원천리 길을 떠난 후 생사불명이 돼버린 한의 아버지,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동생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한의 외삼촌….
이들의 존재가 차츰 분명히 떠오르면서 내 가슴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격랑이 파도쳐 내렸다.
마침내 외삼촌과 상봉한 이 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을 때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할아버지가 만나면 전하라던 선물. 조국의 흙 한줌을 무덤에 뿌리던 한의 처연한 모습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한이 부르는 노래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는 조국에 살고 있거나 남의 당에 가 살고 있거나 간에 「영원히 상처 입은 새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그의 노래처럼「어머니는 살아있는 나의 조국」임에 틀림없으리라.
2막이 끝난 후 휴식시간에 소련 참가팀을 이끌고 온 위원장 「체르니쇼프」가 『조선민족은 영광스런 역사를 갖고 있으며 언제나 자신들의 역사와 풍습을 지켜왔다.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인도적 감정을 가져왔으며 자기나라의 통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소련 사람들은 한국의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는 요지의 공식소감을 88서울예술단장에게 말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더군다나 소련 인민배우인 「미스트리·스카야」가 『음악·춤·연기 모든 면에서 훌륭하며 특히 음악은 무척 돋보였다』고 평해주어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소련선수 「오르노와」도『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한국인들의 큰 비극이라는 것을 말은 모르지만 음악과 춤을 통해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면서 『특히 주인공 한파 외삼촌의 연기는 훌륭했으며, 무대장치도 좋아 강이 정말로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가족을 만난 기쁨도 잠시, 타시겐트로 떠나야하는 한이는 이제 약 열흘 후면 떠나가야 하는 내 처지와 너무나도 닮았다. 그러나 이제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서울 올림픽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특히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이 공연은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만 같다.『아리랑, 아리랑』을 보았던 그 감격을 돌아가 우리 동포들에게 꼭 전해야지. 국립극장 대극장을 뒤로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